4일 오전 5시께 계동사옥 12층 사무실서 투신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이 4일 오전 서울 계동 사옥에서 투신자살했다.
정회장은 이날 새벽 5시50분께 건물 주차장 앞 화단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정회장은 3일밤 11시52분께 자신의 12층 사무실로 들어간 뒤 4일 새벽 투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회장의 주검을 처음 발견한 윤 아무개(63·미화원)씨는 “새벽에 화단주변을 청소하던 중 화단안에 한 노인이 1.5m 길이의 소나무 가지에 발목과 상체 부분이 가려진 채 똑바른 자세로 누워있어 술취한 사람이 쓰러져 있는 줄 알고 주차관리원을 통해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사장실이 있는 회사건물 12층 창문이 열려 있었고, 현장에 출동한 119 구급대원 이 아무개 소방교의 주검 확인 소견 등으로 미뤄 이날 오전 4~5시께 추락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회장의 투신 자살으로 대북송금 및 현대 비자금 150억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와 재판이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금강산사업과 개성공단 조성사업 등 대북 경제협력 사업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회장은 최근 ‘대북송금’ 문제와 관련해 특검수사를 받았는데 이것이 자살과 관련이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대검 중수부는 `현대비자금 150억원’ 사건 수사와 관련, 고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을 7월26일과 31일, 8월2일 등 최근 3차례 불러 출퇴근 조사를 벌였다고 4일 밝혔다.
그러나 정회장 주변에서는 현대의 경영난과 대북송금 및 현대비자금 수사에 대한 심리적 압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지검은 정회장의 투신자살 소식을 접한 직후 당직검사를 서울 종로 계동 사옥으로 보내 현장을 지휘토록 했다.
검찰은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정회장 변사 현장을 신속하고 엄정히 수습, 처리하는 게 필요하다고 보고 당직인 서울지검 유현식 소년부 검사를 현장으로 보내 사망 경위 등을 정밀 조사시켰다.
검찰은 정회장 사망의 정확한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부검을 실시중이다.
한편, 정회장은 4장의 유서를 남겨놓았다.

▲ 정몽헌 회장이 투신한 것으로 알려진 계동 현대사옥 12층 창문(왼쪽).
정몽헌 회장 누구인가
4일 파란만장한 삶을 접은 정몽헌(54) 현대아산 회장은 현대그룹 창설자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5남이자 현대그룹의 법통을 이은 후계자다.
정회장은 지난 1948년 9월14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 330의 176번지에서 태어났으며 서울 보성고와 연세대를 거쳐 75년 11월 현대중공업 차장으로 현대그룹 생활을 시작했다.
그후 현대건설 부장과 상무를 거쳐 지난 81년 현대상선 대표이사 사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섰다.
그는 연세대 국문과 시절 문과대 수석을 차지할 정도로 꼼꼼하고 학구적인 성격으로 아버지 정명예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지난 92년에는 현대전자를 창립, 단기간에 세계적인 반도체 회사 대열에 올리는 등 기회에 밀어붙이는 ‘현대맨’의 뚝심을 과시했다.
또 같은 해 현대상선 비자금 사건으로 수감됐을 당시에는 사식을 거부하는 의연한 자세로 정명예회장으로부터 ‘역시 내 아들’이라는 칭찬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 지난 2월 선친 묘소를 찾아 눈물을 흘리는 고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
정회장은 98년 그룹 공동 회장 취임에 맞춰 금강산 관광 등 대북사업을 관장하기 시작하면서 정주영 회장의 강력한 후계자로 본격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특히 지난 99년 반도체 부문 빅딜을 통해 LG반도체를 인수한 옛 현대전자가 세계 D램 부문 세계 1위로 급부상하면서 정회장의 전성기가 활짝 열리는 듯했다.
정회장은 그 이듬해인 2000년 3월 이른바 ‘왕자의 난’을 통해 형 몽구(현현대자동차그룹 회장)씨를 제치고 공식적으로 현대그룹의 법통을 이어받았다.
평소 소탈하고 사려 깊은 성격으로 조직의 효율성과 상하간 의사소통을 중시한 정회장이지만 업무에 관해서는 부친 정주영 회장 못지 않게 ‘불같은’ 성향이 있었다고 현대 관계자들은 말한다.
정회장은 취미로 스키와 테니스를 즐겼으며, 유족으로는 부인 현정은(현대상선현영원 회장의 딸)씨와 1남 2녀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