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새벽 투신 자살한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자살에는 여러가지 석연치 않은 점들이 적지 않다.
사정이 어려워졌다고는 하지만 국내 굴지의 대기업 그룹 총수인 정회장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현실을 일반인 시각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또 유서에서 나타난 것처럼 정회장은 부인과 자녀들에게 평소 남다른 애정을 보여와 가정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과 김윤규사장(오른쪽)이 지난 2월21일 경의선 임시도로를 이용, 개성공단 답사를 위해 북측으로 넘어가기 전 모습.
그러나 정회장이 최근 처해있던 상황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면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렸던 그의 절박한 심리 상태를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는 있다.
현대그룹 창설자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5남인 그가 지난 2000년 3월 `‘왕자의 난’을 거쳐 현대그룹의 법통을 이어 받은 이후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3년여는 한마디로 좌절과 고통, 번민의 연속이었다.
그룹의 법통을 이었다고는 하지만 현대건설, 현대전자 등 주력사는 그룹 계열사 분리로 그의 수중을 떠났고 현대상선 등 일부 회사들만 그의 영향권 안에 남았다. 재계 일각에서는 그같은 정회장의 처지를 놓고 `‘껍데기만 가졌다’는 비아냥까지 나돌았다.
정회장이 생전에 가장 의욕을 보였던 대북사업 역시 거의 활로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난관에 봉착해 그의 좌절감을 더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현대아산의 금강산 관광사업은 지난 98년 `‘분단 50년’의 장벽을 허무는 역사적 사업이라는 평가 속에 출발했지만 작년까지 시설투자비로 1천851억원이 소요된채 적자만 눈덩이로 불어난 상태다.
지난해 한때 이용객이 늘면서 숨통이 트이는듯 했지만 대북송금 의혹과 함께 북핵 문제가 터지면서 200억원 규모의 정부 보조금이 국회 승인을 받지 못해 현대아산의 자금압박은 더 가중됐다가 사스여파로 지난 4월말부터 두달간은 아예 중단되기도 했다.

▲ 정주영 명예회장의 북한 방문당시 김정일 위원장과 기념촬영한 정회장.
‘`왕자의 난’ 이후 소원해진 형제 관계 등으로 이른바 `‘현대가’ 안에서 큰 도움을 기대할 수도 없는 처지도 정회장에게는 큰 심리적 부담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정회장은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수행중인 대북 사업이 사회적으로 평가절하되는 분위기에 대해 심리적인 압박감을 느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룹 고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 “(정회장이) 선친에게서 물려받은 대북사업에 대해 최근 국민적 평가가 엇갈리자 크게 고민했다”면서 “특히 대북송금 의혹으로 법정을 오가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주위 사람들에게 고민을 자주 털어놨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최측근인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도 정회장의 자살을 `‘뜻밖’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할 때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무언가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긴게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대검 중수부(안대희 검사장)는 ‘`현대비자금 150억원’ 사건 수사와 관련, 정회장을 7월26일, 31일과 주말인 지난 2일까지 3차례 불러 조사한 것으로 전해져, 검찰이 어떤 혐의점을 놓고 정회장을 추궁했는 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그가 자살 전날인 3일 회장실 들어가기 직전 자신의 운전기사에게 `‘20~30분 정도 있다 내려오겠다’고 말한 점도 되짚어볼 대목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정회장이 사전에 자살을 결심하고 회장실에 올라간 것이 아니라, 회장실에서 모처와의 전화 통화 등을 통해 무언가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들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래 저래 정회장의 자살 배경은 당분간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금강산 육로 관광 등으로 대북 사업이 새롭게 탄력을 받을 수도 있는 시점에 정말 자살까지 할 필요가 있었는지, 재벌그룹 회장이 아닌 한 인간의 죽음이 `‘인지상정’의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