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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진주 천황식당의 육회비빔밥 ⓒ 주영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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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imbap in Oxford English Dictionary
■ 정의 : In Korean cookery : a dish consisting of rice topped with other ingredients, typically including sauteed vegetables, meat (esp. beef), and chilli paste, often with the addition of a raw or fried egg. (한국 요리 중에서 쌀밥 위에 일반적으로 볶은 채소, 고기(특히 소고기), 칠리 패스트(chilli paste, 고추장) 등 다른 재료를 얹은 음식으로, 흔히 날달걀이나 달걀부침을 추가한다.)
■ 용례 ① : Among the Korean dishes he recommends are boolgogi (barbecued beef),..bi bim bap(vegetables, meat and rice). (그가 추천하는 한국 음식으로는 불고기(소고기 바비큐), 비빔밥(채소, 고기, 쌀밥)이 있다.), Los Angeles Times (You Magazine section) 26 July 1977 9/2.
■ 용례 ② : Bibimbap is a one-dish meal of rice, mixed with marinated cucumbers, bean sprouts, bracken shoots, mushrooms, fried meats, and much else, topped with a poached egg. (비빔밥은 양념한 오이, 콩나물, 고사리, 버섯, 볶은 고기 등을 섞고 데친 달걀을 그 위에 올린 한 끼의 쌀밥 식사다.), Guardian 12 June 1987 21/4.
■ 용례 ③ : She argues through her eyes and the sharp angle of chopsticks, poised over a dish of bi bim bap. (그녀는 비빔밥이 담긴 그릇을 들고 날카로운 젓가락의 각도와 눈빛으로 논쟁을 벌인다.), Robert P. Kearney, The Warrior Worker : The Challenge of the Korean Way of Working xii., New York : Henry Holt and Co., 1991, p.215.
■ 용례 ④ : Bibimbap, a bowlful of chopped vegetables, rice, fried egg and chili sauce that tradition demands must be thoroughly stirred together before eating. (비빔밥은 다진 채소, 쌀밥, 달걀부침, 칠리소스(고추장)를 한 그릇에 담아, 전통적으로 먹기 전에 함께 잘 섞어 비벼 먹어야 한다.), Toronto Life (Nexis) January 88, 1997.
■ 용례 ⑤ : Our host gestured towards all the other diners who were using their spoons for bibimbap. (음식점 주인은 숟가락으로 비빔밥을 먹고 있는 모든 다른 손님들을 가리켰다.), Jennifer Barclay, Meeting Mr Kim: How I Went to Korea and Learned to Love Kimchi, Summersdale; Summersdale Publishers, 2008,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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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채비빔밥 ⓒ 주영하 |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비빔밥 정의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간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비빔밥을 “흰밥에 고기볶음·나물·튀각 등의 여러 가지 반찬을 섞어 비벼 먹도록 만든 음식”(
encykorea.aks.ac.kr/Article/E0025157)이라고 정의한다. 한국어 사전의 비빔밥 정의는 “밥에 나물·고기·고명·양념 등을 넣어 참기름과 양념으로 비빈 밥”이라고 나온다. 앞에서 소개한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정의를 다시 상기해 보자. “쌀밥 위에 일반적으로 볶은 채소, 고기(특히 소고기), 칠리 패스트(chilli paste, 고추장) 등 다른 재료를 얹은 음식으로, 흔히 날달걀이나 달걀부침을 추가한다.” 여기에서 공통점은 무엇일까?
첫 번째 공통점은 밥이다. 밥은 비빔밥의 핵심이다. 한국어 ‘밥’은 크게 두 가지의 의미로 사용된다. 큰 의미의 ‘밥’은 식사(meal)를 뜻하지만, 작은 의미의 ‘밥’은 곡물로 지은 주식을 가리킨다. 영어 ‘rice’는 좁게는 ‘쌀’이지만, 넓게는 쌀을 주식으로 먹는 동아시아와 남아시아의 사람들의 ‘식사’를 가리키기도 한다. 하지만, 동아시아 일부 지역 사람들은 쌀만을 유일한 주식으로 먹지 않는다. 곧 보리밥, 잡곡밥처럼 곡물로 지은 밥도 있다. 그래서 좁은 의미의 밥은 영어로 ‘cooked rice or other cereals’로 번역해야 옳다.
한국인이 생각하는 비빔밥의 밥은 반드시 ‘쌀밥’에 한정되지 않는다. 쌀과 보리를 섞은 밥도 비빔밥의 인기 주재료다. 한때 한국의 음식점 중에는 보리밥으로만 비빔밥을 만들어 판매하여 인기를 얻은 적도 있다. 물론 잡곡밥도 비빔밥의 주재료가 될 수 있다. 한국에서 나온 사전에서는 비빔밥의 밥을 흰밥 혹은 밥이라고 적었다. 당연히 곡물밥으로 바꾸어야 한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비빔밥 정의에서도 ‘rice’를 ‘cooked rice or other cereal’로 적는 것이 비빔밥의 본래 뜻에 더 알맞다.
두 번째 공통점은 곡물밥에 올리는 재료이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는 “일반적으로 볶은 채소, 고기(특히 소고기), 칠리 패스트 등 다른 재료를” 얹는다고 적었다. 여기에 “날달걀이나 달걀부침을 추가한다.”라고 덧붙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고기볶음·나물·튀각 등의 여러 가지 반찬”을 섞어 비빈다고 적었다. 한국어 사전에는 나물·고기·고명·양념 등을 넣어 참기름과 양념”으로 비빈다고 했다. 한국인이 비빔밥을 만들어 먹을 때 곡물밥 위에 올리는 비빔밥의 재료는 매우 다양하다. 비빔밥에 고기볶음이나 다시마나 죽순 따위를 잘라 식용유에 튀긴 튀각이 들어가지 않아도 한국인 대부분은 비빔밥이라고 판단한다.
비빔밥에 들어가는 주요 재료를 ‘반찬들’이라고 설명해도 좋다. 왜냐하면, 지금 한국에는 산채비빔밥·열무비빔밥·낙지볶음비빔밥·해물비빔밥·멍게비빔밥, 심지어 먹을 수 있는 꽃을 올린 꽃비빔밥도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고추장을 넣지 않고 한식간장으로 간을 맞추는 안동의 헛제사밥도 알고 보면, 비빔밥의 한 종류다. 한국인이 생각하는 비빔밥은 <밥+반찬+양념>의 조합이다. 한국인의 일상식사는 <밥+국+반찬+양념>으로 구성된다. 한국인 대부분은 밥 조금, 반찬 조금을 입속에 넣고 비벼서 먹는다. 이때 침의 아밀라제가 <밥+반찬>과 만나 한국인이 좋아하는 입속의 맛을 뿜어낸다. 비빔밥은 입에 들어가기 전에 아예 그릇에 <밥+반찬+양념>의 비빔을 만들어버린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패스트푸드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한국인은 비빔밥을 먹기 시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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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전서·음식방문》부븸밥 ⓒ 주영하 |
조선 후기 가정형 비빔밥 : 골동반
조선 시대 문헌에서는 비빔밥을 한자로 ‘골동반(骨董飯)’이나 ‘골동반(汨董飯)’ 혹은 ‘교반(交飯)’이라고 적었다. 비빔밥 만드는 법이 적힌 가장 오래된 요리책은 한글 필사본 《시의전서·음식방문》이란 책이다. 이 요리책은 19세기에 쓰였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지금 전해 오는 책은 20세기 초반에 대구의 인쇄소에서 만든 상주군청의 문서에 옮겨 적은 것이다. 이 책에는 비빔밥을 한자로 ‘汨董飯’, 한글로 ‘부븸밥’이라고 적어놓았다. 이 책에 적힌 ‘부븸밥’ 만드는 법은 다음과 같다.
“밥을 정히 짓고 고기 저며 볶아 간납 부쳐 썰어라. 각색 나물 볶아 넣고, 좋은 다시마튀각 튀겨 부숴 넣고, 고춧가루와 깨소금, 기름 많이 넣고 비비여 그릇에 담아, 위에는 잡탕거리처럼 계란 부쳐 골패짝 만큼 썰어 얹고, 완자는 고기 곱게 다져 잘 재워 구슬만치 빚어 밀가루 약간 묻혀 계란 씌워 부쳐 얹나니라. 비빔밥 상에 장국은 잡탕국으로 하여 놓나니라.”
옛 한글이라서 이해하기가 조금 어렵다. 지금의 말로 다시 설명하겠다. 정성껏 밥을 지어 바닥이 편평하고 높이가 낮은 큰 놋그릇에 담는다. 소고기를 양념에 재워 두었다가 볶는다. 간납은 한자로 ‘간납(肝納)’이라고 쓴다. 다지거나 얇게 저미거나 꼬치에 꿴 육류, 어패류, 채소류 등의 재료에 밀가루를 묻히고 겉에 달걀을 입혀 기름에 부쳐 만든 ‘전’이다. 소고기 볶은 것과 전을 밥 위에 올린다. 또 여러 나물도 볶아서 넣는다. 다시마로 만든 튀각을 부숴서 넣는다. 고춧가루와 깨소금, 참기름을 많이 넣어 비빈다. 이것을 놋으로 만든 밥그릇인 주발(周鉢)이나 사기(沙器)로 빚은 밥그릇인 사발(沙鉢)에 담는다. 그 위에 달걀을 부쳐 길게 썰어 올리고 구슬 크기의 소고기 완자도 올린다.
20세기 음식점형 비빔밥의 탄생
20세기에 들어오면 근대 인쇄술로 출판된 요리책 대부분은 비빔밥 요리법을 빠트리지 않았다. 그만큼 조선 후기 이래 한국인이 즐겨 먹었던 음식이 바로 비빔밥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비빔밥 요리법을 살필 때, 그것이 가정형인가, 아니면 음식점형인가를 따져야 한다. 1912년 12월 18일자 《매일신보》 3면의 〈상점평판기: 조선요리점의 시조 명월관〉이란 제목의 기사에는 1900년대부터 서울에 전골집, 냉면집, 장국밥집, 설렁탕집과 함께 비빔밥집도 생겼다고 보도했다. 20세기 들어와서 음식점형 비빔밥이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서울의 비빔밥집의 요리법을 알 수 있는 자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다행히 1929년 12월 1일에 발행된 잡지 《별건곤》 제24호에 실린 〈진주명물(晉州名物) 비빔밥〉이란 글에서 당시의 비빔밥 모습을 추정할 수 있다.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점은 《별건곤》에 실린 기사의 제목에 나오는 도시는 ‘전주’가 아니라, 경상남도의 ‘진주’라는 것이다.
“맛나고 값 헐한 진주비빔밥은 서울비빔밥과 같이 큰 고깃점을 그냥 놓은 것과 콩나물 발이 세 치나 되는 것을 넝쿨지게 놓은 것과는 도저히 비길 수 없습니다. 하얀 쌀밥 위에 색을 조화시켜서 가느다란 새파란 야채 옆에는 고사리나물, 또 옆에는 노르스름한 숙주나물, 이러한 방법으로 가지각색 나물을 둘러놓은 다음에, 고기를 잘게 익혀 끓인 장국을 부어 비비기에 적당할 만큼, 그 위에는 유리 조각 같은 황(黃) 청포 서너 사슬을 놓은 다음, 옆에 육회를 곱게 썰어놓고, 입맛이 깔끔한 고추장을 조금 넣습니다.”
앞에서 소개한 《시의전서·음식방문》의 비빔밥 요리법처럼 밥에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먼저 비벼서 주발에 담는 방법이 아니다. 밥을 그릇에 담고 그 위에 서로 다른 색을 지닌 나물을 빙 둘러놓는다. 여기에 소고기로 끓인 장국을 조금 붓는다. 그래야 비빌 때 좋다. 다시 위에 치자 물을 들여 쑨 노란색의 청포묵을 서너 줄 놓는다. 청포묵 옆에는 길게 썬 육회를 가지런히 놓는다. 마지막으로 입맛도 깔끔하게 해주면서 육회의 비린내를 제거해주는 고추장을 올린다. 이것이 바로 음식점형 비빔밥인 ‘육회비빔밥’이다. 음식점에서는 이렇게 재료를 그릇에 담아 식탁에 놓으면, 손님이 직접 비벼서 먹는다.(용례⑤가 비빔밥 먹는 방법을 소개한 책이다)
음식점형 비빔밥은 1910년대 이후 육회비빔밥이란 모습으로 서울과 진주 등지에서 음식점의 잘 나가는 메뉴가 되었다. 1910년대 서울과 진주를 비롯한 전국의 주요 도시에는 소를 전문적으로 거래하기 위해 5일마다 열리는 우시장이 있었다. 비록 지금처럼 냉동시설이 없던 시절이지만, 큰 우시장이 열렸던 도시의 정육점에서는 비빔밥집에 육회용 소고기를 공급해주었다. 그러면 비빔밥집에서는 육회를 비빔밥 위에 올려 가정형 비빔밥과 구분했다. 예나 지금이나 이렇게 해야 손님들이 음식점의 독창성에 끌려 돈을 내고 비빔밥을 사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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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에서 개발된 돌솥비빔밥 ⓒ 주영하 |
음식점형 전주비빔밥의 진화
오늘날 한국의 음식점형 비빔밥은 전주가 가장 유명하다. 나는 1980년대 후반 전주에서 당시 60대 이상의 전주 사람들이 음식점에 가서 비빔밥을 사 먹지 않는다고 말을 들었다. 왜냐고 물으면 그까짓 것 집에서도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데 왜 음식점에 가서 사 먹느냐고 했다. 당시만 해도 전주 사람들은 시장의 노점에서 비빔밥을 사 먹었다. 이 비빔밥은 가정형이었다. 1960년대 중반부터 육회비빔밥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음식점이 한둘씩 생겼고, 몇 년 지나자 네다섯 집으로 늘어났다. 이들 전주비빔밥집에서는 서로 차별화를 꾀하려고 육회비빔밥 정가운데에 날달걀의 노른자를 넣었다. 요사이야 집에서 비빔밥을 만들어도 반드시 달걀을 넣지만, 1960년대만 해도 비싸서 특별한 날이 아니면 달걀을 먹기가 어려웠다.
날달걀이 올라간 비빔밤이 돌솥비빔밥으로 진화한 곳도 전주다. 1969년 전주의 한 비빔밥집에서는 이웃한 장수의 공장에서 생산한 돌솥을 구해서 비빔밥을 담았다. 나는 이 음식점 주인을 직접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1960년대만 해도 뜨거운 밥에 재료를 올려서 선짓국이나 콩나물국을 제공했다. 그런데 겨울이면 밥이 빨리 식어서 비빔밥이 차가워졌다. 그래서 낸 아이디어가 장수에서 판매하는 돌솥을 불에 달구어 그 안에 비빔밥 재료를 넣는 것이었다. 처음 돌솥비빔밥을 본 손님들은 데일까 걱정했지만, 따뜻한 비빔밥의 매력에 빠졌다. 그는 1981년 서울 명동에 ‘전주돌솥비빔밥’을 내세워 개업했고 크게 성공했다. 2021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지린성에서는 ‘조선족 돌솥비빔밥 제작 기예’라는 명칭으로 성급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이것은 지린성 정부와 연변조선족자치주 정부가 돌솥비빔밥의 역사를 모르고 한 조치다.
사실 전주비빔밥이 유명하게 된 곳은 전주가 아니라 서울이다. 1974년, 서울의 한 대형 백화점에서 ‘팔도강산민속물산전’이란 기획행사를 개최하면서, 전주의 한 비빔밥음식점을 초청했다. 1970년대 전주의 비빔밥음식점에서는 손님이 비빔밥을 주문하면, 달랑 한 그릇의 비빔밥과 국, 김치만 제공하지 않고, 거의 20가지가 넘는 반찬을 함께 냈다. 서울의 대형 백화점에 입점한 전주비빔밥음식점은 처음에 전주의 상차림대로 차렸다. 그러자 서울 사람들은 이 음식점 앞에 장사진을 쳤다. 이후 ‘전주비빔밥’은 전국에서 이름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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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nnifer Barclay의 한국여행기 책 표지 |
이민사를 담고 있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용례들
비빔밥의 옥스퍼드 영어사전 용례들은 한국인의 해외 이민 역사를 담고 있다. 용례①은 1977년 Los Angeles Times에 나온다. 이 신문에서 소개한 비빔밥을 판매한 음식점은 미국 Los Angeles의 Koreatown에 있었던 ‘Olympic 청국장집’이다. 미국 연방정부는 1965년 이민 및 국적법을 개정하여 아시아계 이민에 대한 제한을 철폐했다. 그때 한국의 박정희 군사정권은 독재로 치닫고 있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한국인의 미국이민이 많아졌고, 1970년대 후반 LA 코리아타운은 가장 큰 성장을 했다. 현지 신문이 이 장면을 놓칠 리 없었다.
용례②는 1987년 영국의 Guardian에 실렸다. 김종백의 《영국한인사》(2024년)에 의하면, 1970년대 후반부터 런던의 뉴몰든에 한인들이 많이 살기 시작했다. 1987년이 되자, 뉴몰든은 런던의 코리아타운으로 자리 잡았다. 현지 신문은 이 장면에 주목하여 뉴몰든의 한국음식점에서 판매하던 비빔밥은 물론이고, 빈대떡 등 여러 가지 음식을 소개했다.
용례④는 캐나다의 토론토에서 발행하는 Toronto Life에 실린 1997년의 기사다. 1997년 한국은 IMF 경제위기를 맞이했고, 캐나다 연방정부의 투자 이민정책이 한국의 중산층을 토론토와 밴쿠버로 불러들였다. 넷플릭스의 캐나다 드라마 가 토론토의 한인 가족을 주인공으로 삼은 이유도 그만큼 토론토에는 아시아 이민자가 많기 때문이다.
용례⑤는 2007년 런던의 뉴몰든에 살았던 여행작가 Jennifer Barclay의 한국 여행기다. 그녀는 2000년 가을에 서울의 남산에 있는 한 호텔에 묵으면서 안내자도 없이 강북의 한국음식점 탐방의 길에 나섰다. 종로3가 근처의 냉면집에 가서 여성 종업원이 정원용 가위처럼 큰 가위로 냉면을 잘라주는 모습에 겁을 크게 먹었다. 이후 남산 근처의 한국음식점에서 비빔밥을 주문하고 먹는 방법을 몰라서 당황하고 있을 때 음식점 주인이 알려주는 장면이 용례⑤에 묘사되어 있다. 제니퍼는 2008년에 런던에서 이 책을 내면서 부록에 런던 museum street의 ‘비빔밥 카페’를 소개했다. 이제 비빔밥은 런던의 어떤 한국음식점에 가도 먹을 수 있는 메뉴다. 심지어 런던의 대형 몰에 있는 food court에서도 만날 수 있는 K푸드의 대표다.
음식 비평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 기자 Jonathan Gold는 2013년 10월 10일 트위터에 “그 소박함에 깃든 약간 환각적인……, 그래서 너무 좋다.”라는 글을 올렸다. 그의 트위터 팔로워들은 “내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한국음식”이라든지, “그릇이 마치 핵융합로(fusion reactor) 속에서 꺼내 온 것처럼 매우 뜨겁다.”라는 등의 댓글을 달았다.
고추장은 비빔밥 재료의 어울림을 극대화해 주는 소스다. 한국인은 반찬이 마땅치 않을 때나 입맛이 없을 때나 빨리 끼니를 해결해야 할 때, 식탁 위에 올려야 하는 밥과 반찬으로 비빔밥을 만든다. 한국인은 비빔밥을 먹을 때 반드시 국을 곁들여 먹는다. 그래야 ‘밥+반찬+국’의 ‘핵융합’이 입속에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나는 비빔밥이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 각곳에서 ‘핵융합’의 진화 과정을 통해서 매번 새롭게 변신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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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비빔밥 ⓒ 농촌진흥청 |
크랩으로 비빔밥을 만들어보자 : 대게비빔밥
■ 재료
밥 840g (4공기), 대게 (혹은 크랩) 2마리, 오이 150g (1개), 애호박 120g (1/3개), 당근 120g (약 1개), 도라지 80g (4뿌리), 달걀 50g (1개), 김 2g (1장), 소금 1큰술, 식용유 1작은술, 참기름 1/2큰술, 다진 마늘 1큰술, 깨소금 1큰술, 설탕 약간
■ 요리법
① 대게를 깨끗이 손질하여 찜통에 게딱지가 바닥으로 가게 뒤집어 넣고 10분 정도 찐다.
② 애호박과 오이는 5cm 길이로 돌려 깎기 하여 껍질을 벗기고 채 썰어 소금에 절여 물기를 제거한 후 팬에서 볶는다.
③ 당근은 채 썰어 (50×0.2×0.2cm)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데친 후 소금, 참기름을 넣고 무쳐 팬에서 볶는다.
④ 도라지는 5cm 길이로 잘라 가늘게 찢고 소금을 넣고 주물러서 쓴맛을 제거한 다음 끓는 물에 데쳐 다진 마늘, 깨소금, 참기름, 설탕을 넣고 무쳐 팬에서 볶는다.
⑤ 달걀은 황백지단을 부쳐 곱게 채 썬다 (5×0.2×0.2cm).
⑥ 김은 불에 살짝 구운 후 부수어 놓는다.
⑦ 찐 게의 게딱지를 떼어 낸 후 게 내장을 덜어내고, 다리마디에서 게살을 발라낸다.
⑧ 그릇에 밥을 담아 ②, ③, ④의 나물과 게살을 색 맞추어 얹고, 김과 황백지단을 고명으로 올린다.
출처 : 농촌진흥청, www2.rda.go.kr/food/, 2006.
글 :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
음식을 문화와 역사학, 사회과학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연구하는 음식인문학자(문화인류학박사)로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다. 2024년 9월부터 1년간 SOAS 한국학센터 방문학자로 런던에 체류 중이다.
저서 :
《음식 인문학: 음식으로 본 한국의 역사와 문화》(2011),《식탁 위의 한국사: 메뉴로 본 20세기 한국 음식문화사》(2013, 베트남·일본·태국에서 번역출판),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 식사 방식으로 본 한국 음식문화사》(2018, 타이완에서 번역출판), 《조선의 미식가들》(2019), 《백년식사: 대한제국 서양식 만찬부터 K-푸드까지》(2020), 《음식을 공부합니다》(2021), 《그림으로 맛보는 조선음식사》(2022, 중국에서 번역출판), 《분단 이전 북한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일제강점기 북한 음식》(2023), 《글로벌푸드 한국사》(2023), 《국수: 사람의 이동이 만들어 낸 오딧세이》(2025)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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