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은 우리의 일상을 공유하는 최소 단위의 공동체이다. 5월은 이런 가족의 의미를 돌아볼 수 있는 여러 기념일이 많은 달이다.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부부의날(22일) 등 이런 기념일은 내 나이의 숫자와 비례하여 쌓여온 추억들과 흔적들과 연결되어 사는 나라와 상황이 바뀌었어도 늘 떠나지 않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래서 그런지 15년을 넘게 영국에 살고 있지만 내게는 5월의 기념일이 여전히 내 가족과 사회 구성원의 소중함을 기념하는 진짜 기념일이다. 가족은 아니지만 스승의날(15일)이 있는 이유도 스승을 마음의 부모로 존중하는 오랜 세월 지속된 사회적 공감대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2016년 ‘가정의 달을 맞이 가장 생각이 많이 나는 구성원’이란 주제로 한 설문조사에서 1위는‘부모님’(87%)이었다고 한다. 고국을 떠나 해외에 살고 있기에 부모님과 따뜻한 식사 한 끼 대접할 수 없기에 매년 이맘때가 되면 양가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가득하다. 평소 내 자녀들이 좋아하는 음식과 재능 그리고 취미와 장난감 등에 관하여 관심을 두지만, 정작 아버지와 어머니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도 바로 떠올리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스스로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최근 알고 지내는 목사님께서 어머니께서 30년간 쓰신 일기를 가지고 <엄마의 일기가 하늘에 닿으면> 제목의 책을 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한 부모님이 비워둔 집을 정리하던 중에 옷장 안 보자기에 쌓인 38권의 일기를 발견하였다고 한다. 30년, 10,950일, 38권의 기도 일기. 38권의 일기장 안에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혹은 전혀 관심 밖에 있던 부모님이 살아온 삶과 신앙이 있었다. 한 여인이 가난한 섬마을로 시집와서 김 양식장과 염전과 논과 밭에서 처절하고 고단한 인생이 담겨 있고, 동시에 어느 날 종소리를 듣고 찾아간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살아갈 의미를 발견한 기쁨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목사님의 어머니가 보낸 세월을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하다. 그리고 일기 속 기도는 어느 순간 내 어머니의 음성이며 내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이 된다. 세상에서 작고 약한 시골의 한 엄마는 자신들의 가난하고 고달픈 삶보다 아들과 손주들을 위한 마음으로 가득하다. 자신을 위한 기도는 없다. 남편과 아들과 손주를 위한 엄마의 간절한 마음만이 자리한다.
1994년 5월 21일 토요일
오늘 새벽부터 날씨가 좋지 않아서 더 바쁘게 일했습니다. 아무리 바쁘게 일을 해도 우리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주님, 이 연약한 저희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소금 작업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집안일을 해야 합니다. 주님 붙잡아 주시고 주 안에 살게 하옵소서. 어려운 일이 자꾸만 생기고 시험 거리가 너무너무 많습니다. 우리 남편 이 집사님 주님과 더불어 살게 하옵소서. 우리 아들 이 전도사도 항상 지켜주시고 도와주시옵소서. 주님 뜻대로 살고자 원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무명의 한 여성의 일기 속 담긴 짧은 기도문은 꾸미지 않아도 아름다웠다. 저자 이화정 목사님은 부모님의 시련과 고생이 이렇게 가혹했는지 몰랐다고 한다. 맞다. 나 역시 나의 부모님의 일생을 모른다. 그런데 이해가 된다. 부모님 세대는 고달프고 척박한 시대를 살았다. 자녀가 속상해할 이야기보다는 행복하고 웃는 얼굴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 부모기에 우리 모두의 부모님은 그만큼 숨겨진 혹은 가슴에 품어야 할 이야기가 많았을 테다.
부모 공경은 약속이 있는 첫째 계명이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 5:16)”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잘 사는 법 중 가장 우선이라 하신다. 그만큼 쉽게 잊고 무관심해지는 태도가 부모를 향한 감사함과 존중이기도 하다.
가족의 개념이 사라지고 1인 가구 비율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홀로 사는 생활이 편한 시대를 살수록 가족의 소중함과 특히 부모님의 의미를 돌아보았으면 한다. 뜬금없고 낯설다 소리 들을지라도“사랑해”라고 부모님께 고백하는 따뜻한 5월을 보내길 소원한다. 이런 고백을 할 기회가 남아 있음이 감사할 뿐이다.
백장현 목사
아름다운 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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