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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판 촌뜨기 셰익스피어가 진짜 대문호 셰익스피어인가
코리안위클리  2014/03/19, 08:34:51   
▲ 셰익스피어 시대 극장 터에 복원한 런던 글로브극장.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

영국의 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 팬들은 올해를 시작으로 향후 3년간은 바쁠 것 같다. 올해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과 2016년 사망 400주년이 연이어 있어 아예 3년이 모두 축제기간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축제는 셰익스피어의 생일이자 사망일인 4월 23일, 영국 수호 성인 조지 성인 축일을 즈음해서 시작된다. 영어를 모국어나 공식언어로 쓰는 60여개국에서 열리는 성대한 축제는 당연한 일지만 그 이외의 나라에서도 축제가 준비 중이다. 영국문화원(British Council)과 로열셰익스피어극단(RSC)의 조사에 의하면 세계 학교의 반 이상에서 셰익스피어를 가르친다. 영어가 제일의 국제 언어가 된 지금 셰익스피어의 중요성과 영향력은 나날이 커져가고 있다.

영국인에게 있어 셰익스피어는 그냥 문호가 아니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이다. 19세기 소설가 찰스 디킨스를 사랑한다면 셰익스피어는 존경한다. 영국인이라면 누구에게나 한 번쯤 학창 시절 그의 작품이 한 학기 수업 과제가 되어 골머리를 앓은 경험이 있다.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영국인마저도 해설서를 놓고 봐야 할 정도로 셰익스피어의 영어는 넓고 깊다. 해서 괴테에 의해 독일어가 비로소 언어로 만들어졌다면 셰익스피어는 영어를 그냥 언어가 아닌 세계 최고의 언어로 만들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2만8829개의 단어가 사용되었다. 거기에 비해 현대인은 6만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셰익스피어 시대에 비해 현대인은 두 배가 넘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작품에서 그전까지는 한 번도 영어에 등장하지 않던 새 단어를 1700여개나 소개했다. 햄릿 한 작품에만도 600여개의 단어를 새로 선보였다. 그가 도입한 단어 중에는 오늘날 매일 사용하는 ‘critical(중대한·비판적인·위급한), extract(추출하다), excellent(훌륭한), assassination(암살), lonely(외로운), accommodation(숙소), amazement(경악), bloody(유혈의·빌어먹을), hurry(서둘러), eyeball(눈알), skim milk(저지방 우유), road(길)’가 있다.

‘아니 이런 것까지도?’라고 할 만한 중요한 단어들도 눈에 띈다. 만일 없었으면 어떻게 말을 이어갈지 모를 중요한 단어들까지 그의 손을 거쳐 세상에 태어났다. 기존 단어에 un이라는 접두사를 붙여 신조어도 많이 만들었다. 이런 종류의 단어가 314개나 된다. 명사를 동사로, 동사를 부사로, 부사를 형용사로 사용하여 단어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전에는 한 번도 조합하여 사용해 본 적이 없는 단어들을 묶어 새로운 의미로 쓰게 했다. 접두사와 접미사를 붙여 새로운 단어로 탈바꿈시키기도 했고 완전히 새 단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단어들을 조합해 짧은 구절을 만들어 단어 대신에 말 속에 섞어 쓸 수 있게 했다는 점이다. 그런 구절들 중에는 오늘날 우리가 매일 쓰는 것들도 허다하다. ‘Sorry sight(슬픈 광경, ‘맥베스’), All of sudden(청천벽력같이·갑자기, ‘말괄량이 길들이기’), Fair play(공정한 행위, ‘템페스트’), High time(적절한 때, ‘실수의 희극’), lie low(숨죽여 있기·시간을 기다리다, ‘헛소동’), Sweet sorrow(달콤한 슬픔,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것이 그런 구절들이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All’s well that ends well, ‘동명의 희곡’), 세상 방방곡곡에서(All corners of the world, ‘심벨린’), 어차피 올 것은 온다(Come what come may, ‘맥베스’), 내 마음을 솔직히 말하면(I will wear my heart upon my sleeve, ‘오셀로’), 사랑은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The course of true love never did run smooth, ‘한여름 밤의 꿈’)’ 같은 것은 거의 매일 영국인이 사용하는 셰익스피어 작품에 나오는 조금 긴 구절들이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 낸 구절들로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것들만 해도 800여개가 된다. 실제 언어학자들은 셰익스피어의 천재적인 언어 재능은 신조어에 있지 않고 단어를 조합해 새로운 의미나 용도의 구절을 만드는 데 있다고 한다. 단어 몇 개로 간단히 조합된 이런 짧은 구절의 촌철살인 대사가 배우의 입에서 나오면 청중들은 비록 처음 들어도 금방 의미를 알아챌 수 있다는 데 셰익스피어 극의 묘미가 있다. 상황에 너무 적절하게 맞아 감탄과 함께 무릎을 치게 만드는 것이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이다.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이 단시를 빼면 모두가 연극 극본이니, 이런 무릎을 치게 만드는 구절은 필수이다.

예를 들면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가장 비극적 사랑이면서도 세상의 수많은 연인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최고의 걸작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sweet sorrow’가 그런 구절이다. 두 연인이 유명한 발코니 장면에서 헤어져야 할 시간이 오자 줄리엣이 “잘 자요! 잘 자요! 이별이 이렇게 달콤한 슬픔일 줄이야! 나는 내일까지라도 굿나잇이라고 말할래요(Good night! good night! Parting is such sweet sorrow that I’ll say good night until tonight becomes tomorrow)”라고 하면서 헤어지길 못내 아쉬워한다. 내일 만나기를 약속하면서도 지금 당장 헤어지기 싫어하는 연인들의 안타까운 심정을 기가 막히게 표현한 장면이다.

여기서 둘의 마음을 ‘sweet sorrow’라는 말 말고는 더 이상 표현할 방법이 없다. 더군다나 발음은 비슷한 압운(押韻·rhyme)의 묘미를 보여준 전형이다. 이렇게 영국인들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나오는 구절들을 잘 찾아 일상 언어에서 적절하게 사용하면서 쾌감을 느낀다. 흡사 우리가 사자성어를 적절할 때 쓰면서 느끼는 기분과 같다. 영화에서 보면 대화 중 한 사람이 어떤 말을 하면 다른 사람이 금방 알아채고는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 꿈에서!”라고 받는다. 한시(漢詩)에서 상대방이 낸 운을 받아 대구(對句)로 답하는 식이다. 상대방의 유식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자신도 알아챘다는 자랑을 하는 셈이다. 영국인들이 즐기는 일종의 지식게임이다.

 이렇게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단순히 고전에 머무르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살아 움직이게 되기까지에는 전문가들의 끊임없는 연구가 큰 몫을 했다. 셰익스피어를 연구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런 구절들이 셰익스피어가 처음으로 만들어(coined)냈음을 알게 되어 이를 쓸 때 더욱 묘미를 느끼게 되었다. 셰익스피어 전문가들은 파파라치같이 매일 어딘가에서 셰익스피어의 시시콜콜한 사생활을 파고들어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고 그것으로 별별 자료를 다 만들어낸다. ‘셰익스피어가 동성연애자였다’ 등 셰익스피어의 ‘잃어버린 시절(Lost Period)’에 대한 추적이 이루어져 새로운 사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최근에는 ‘잃어버린 시절’(1585~1592)에 셰익스피어가 영국 남부 시골 마을에서 2년간 선생을 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렇게 쌓인 셰익스피어에 관한 자료는 상상을 초월한다. 아마 한 인간에 대한 연구가 이렇게 많이 이루어진 경우는 예수 말고는 없는 듯하다.

영국 국립도서관의 소장도서나 자료 목록부터 보자. 셰익스피어와 관련된 색인이 3만6065개나 된다. 도서는 물론 연구기록, 각종 미디어 자료, 고문서 등 없는 자료가 없다. 미국 국회 도서관에도 3107편의 자료가 등록되어 있다. 셰익스피어 연구에 관해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학술지 ‘셰익스피어 쿼터리’에 따르면 매년 세계적으로 평균 4000여편의 논문이 발표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 연구를 통해 밝혀진 자료들을 보면 정말 이런 자료를 누가 사용할까 하는 회의가 감탄과 함께 들 정도이다. 예를 들면 셰익스피어 작품 전체에는 13만8198개의 쉼표, 2만6794개의 반점, 1만5785개의 의문부호가 사용되었다고 밝혀 냈다. 뿐만 아니라 셰익스피어 자료를 담고 있는 웹사이트에 특정 단어를 입력하면 셰익스피어 작품 전체에서 몇 번 그 단어가 사용되었는지를 알려 준다. 그래서 한번 흥미로 입력해 보았다. 사랑(love) 2191회, 증오(hate) 184회, 저주(curse) 107, 죽임(kill) 220회, 왕 (king) 1546회, 섹스(sex) 19회, 그리스도(Christ) 7회, 예수(Jesus) 4회, 살인(murder) 101회, 돈(money) 175회, 금(gold) 233회, 교황(pope) 19회, 악마(devil) 228회가 사용되었다고 나왔다. 특이하게도 성경(bible), 삼위일체(trinity), 성령(spirit) 같은 단어는 전혀 사용이 된 적이 없다. 셰익스피어는 종교적이지는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의 희곡 38개는 2만8829개의 단어를 모두 88만4421번 사용해서 만들어졌는데 그중 반에 조금 못 미치는 1만2493개 단어는 딱 한 번만 등장한다. 딱 한 번을 사용하더라도 그 장면에서는 그 단어밖에는 없었다는 뜻이다. 1223명의 등장인물이 3만4895개의 대사를 말했고, 이를 모두 기록하면 11만8406행에 이른다.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당시는 별다른 오락이 없었다. 당시 가장 인기 있던 오락 중 하나가 동물 괴롭히기였을 정도였다. 특히 인기 있는 것이 곰 괴롭히기였다는데 덩치 큰 곰을 조련사가 갖은 방법으로 괴롭히면 고통에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웃으면서 즐거워했다고 한다. 이렇게 오락에 굶주려 있던 튜더시대 사람들에게 연극은 당시 한창 뜨고 있던 오락이었다. 1567년 영국의 첫 극장 레드 라이언의 개관으로부터 1642년 청교도혁명으로 런던 극장 전체가 문을 닫을 때까지 영국에서 연극은 75년간 무려 5000만명의 유료 관객을 불러 모았다. 당시는 영국 전체 인구가 500만명이었고 연극의 중심도시인 런던 인구도 20만명에 불과할 때였다. 5000만명이 75년 사이에 극장에 들어왔다면 결국 극장이 문을 닫는 일요일, 축제 기간 등을 뺀 매일 런던 극장에 평균 3000명의 관객이 들어왔다는 뜻이다.

당시는 관객층이 얇아 같은 연극을 장기 공연할 수가 없었다. 거의 매일 새로운 연극을 올려야 했다. 해서 당시 작가들은 끝도 없이 새 작품을 써야 했다. 연극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가 그렇게 높을 때도 아니었다. 요즘으로 얘기하면 야간업소의 공연물 정도로 취급받았다. 그래도 새로운 연극에 대한 수요는 뜨거울 때라 작가들은 기존 희곡의 줄거리와 대사만 조금 새롭게 다듬어 흥미 본위로 쉽게 써서 새로운 극이라고 포장해서 무대에 마구잡이로 올렸다. 당시 희곡 작가들은 작품을 공을 들여 쓰지도 않았다. 이런 식으로 쉽게 작품을 쓰니 극본 공급이 수요를 넘쳐 작품가도 형편없어졌고 희곡을 써서는 생활이 안 될 정도였다. 판권이라는 개념이 없었기에 남의 희곡 표절이나 모작은 전혀 문제가 안 되던 시절이었다. 심지어는 자기 작품의 줄거리와 등장인물을 손봐 다른 작품인 것처럼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워낙 작가들 사이에서 표절과 모작이 심하다 보니 극본 유출을 우려해 출연배우들에게 전체 극본이 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대신 배우 개개인의 대사만 수록된 쪽대본을 주었다. 해서 배우는 자기 대사만 외우고 들어가면 되었다. 연극이 끝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해당 원고는 그냥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 와중에서 셰익스피어 작품은 군계일학이었다. 그런 걸작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은 존 헤밍과 헨리 콘델 두 사람 덕분이다. 헤밍과 콘델은 셰익스피어 연극 전문 배우이자 셰익스피어의 동료였다. 당시는 저작권에 따른 수입도 없었고 이미 극장에서 극본에 대한 대가를 받았기 때문에 극본 소유권이 극장에 있었다. 셰익스피어마저도 자신의 작품 보존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셰익스피어 동료였던 벤 존슨이 생전에 자신의 희곡을 모아 책으로 엮는 것을 보아서인지 헤밍과 콘델은 셰익스피어가 죽은 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유고를 모으기 시작했다. 7년 뒤 ‘퍼스트 폴리오(First Folio)’라 불리는 희곡모음집이 발간된다. 안쪽 표지에 셰익스피어의 초상화를 비롯해 36개의 극본이 수록되어 있다.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1564년부터 모든 극장이 문을 닫는 1642년까지 78년간 런던에서 무대에 올려진 3000여편의 희곡 중 80%는 제목만 알려져 있다. 내용이 알려진 230편 중에서 38편이 셰익스피어 작품이고 그중 36편이 퍼스트 폴리오에 올라와 있다.

퍼스트 폴리오의 정식 명칭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극, 역사극, 비극(William Shakespeare’s Comedies, Histories, and Tragedies)’이다. 책값이 당시로서는 고가인 1파운드였으나 잘 팔려 출간 후 62년 동안 4판까지 나왔다. 몇 권 인쇄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750~1000권 사이라고는 하는데 현재 228권이 남아 있다. 147권이 미국에 있으며 그중에서 헨리 클레이 폴저라는 유전으로 돈을 번 백만장자가 수집한 82권이 ‘셰익스피어 폴저 도서관’에 있다. 이밖에 일본 메이지대학이 12권, 영국 국립도서관이 5권을 소유하고 있다. 폴저 도서관 소유 82권 중 79권은 짜깁기를 한 것들로 알려져 있어 실제는 13권만이 완벽하다.

퍼스트 폴리오는 오자도 많고 해서 제대로 된 책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이 책에 대한 얘기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퍼스트 폴리오에 대한 연구가 아직 미진하다는 뜻이다. 그동안의 조사에 의하면 책은 9명의 식자공이 조판했고 세 군데서 인쇄되었다. 인쇄 도중 수정된 것들도 많아 같은 책이 한 권도 없다. 영국 더함대학교에 있던 책이 도난당했다가 다시 나타났는데 도둑들은 책의 원 소유주가 누군인지 모르게 하려고 페이지도 찢고 표지도 없앴지만 전문가들은 금방 알아봤다. 당시 인쇄된 책은 책마다 각각의 특징이 있었다. 일종의 DNA 같은 것이다. 어떤 부분에 잉크가 덜 묻었다든지 활자가 더 무뎌지는 등의 특징이 책마다 있다. 이런 특징을 분류해서 현존하는 책에 번호를 부여했다. 그래서 도둑들이 팔려고 들고 온 더함 책을 본 폴저 도서관의 전문가는 금방 알아보고 경찰을 바로 불렀다.

퍼스트 폴리오는 거의 도서관이나 박물관들이 소장하고 있고 개인들이 가진 것이 없어 판매를 위해 시장에 나오면 가격이 엄청나게 높게 매겨진다. 가장 최근에 판매된 것은 2006년 경매회사 소더비에 나온 것이다. 예정가가 350만파운드(61억원)였으나 280만파운드(49억원)에 팔렸다. 지금까지 가장 비싸게 팔린 것은 학교 운영비에 쪼들린 옥스퍼드대학 오리올칼리지가 석유재벌 폴 게티에게 판 350만파운드짜리였다. 참고로 역사상 가장 비싸게 팔린 책은 제프리 초서의 ‘캔터버리 이야기’ 원본으로 1998년 460만파운드에 팔렸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셰익스피어가 실제 그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작품들을 썼느냐는 의문이 반드시 따라 나온다. 여기에 관해서는 지난 200년간 끊임없는 논쟁이 있어 왔다. 논쟁의 요지는 간단하다. 런던에서 서북쪽으로 160㎞ 떨어져 도보로 4일, 말을 타고 2일이나 걸리던 스트랫퍼드 시골에서 제대로 된 교육도 못 받은 가죽장갑공의 아들이 그렇게 훌륭한 작품을 과연 썼겠느냐는 의문 때문이다. 그런 신분의 사람이 궁중의 각종 섬세한 예법이라든지 정치적 음모나 사건 같은 것을 어떻게 알고 묘사할 수 있었는가 하는 의문은 시작에 불과하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제대로 된 교육을 오래 받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고전, 예술, 역사, 관습, 정치, 종교, 수사학, 의학, 법학, 체육, 군사, 천문학 등의 광범위한 지식이 들어 있다. 유럽 각국에 대한 묘사도 직접 가 보지 않고는 불가능할 정도로 풍부하다. 특히 상류 귀족사회, 특히 그중에도 궁정 생활에 대한 경험이나 지식도 없는 시골 평민 출신이 아무리 천재라도 작가적인 상상력만으로 그런 작품들을 쓸 수는 없다고 하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천재 문호 셰익스피어의 존재에 대해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두 개의 그룹이 있다. 의심하는 측을 옥스퍼드파라고 하고, 옹호하는 파를 스트랫퍼드파라고 부른다. 옥스퍼드파의 이론은 흥미진진하고 아주 설득력이 있어 한번 믿기 시작하면 바로 빠져들 만큼 논리정연하다. 의심을 하는 이론이 등장한 시기는 19세기다. 그전까지는 아무도 의심을 하지 않았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재평가로 시작된 찬사와 동시에 ‘과연 이처럼 엄청난 작품을 쓴 사람이 정말 그런 초라한 출신 성분과 불명확한 일생의 기록을 가진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 등장했다.

우리가 여기서 무시하고 넘어가서는 안 되는 사실이 있다. 분명 윌리엄 셰익스피어라는 자연인은 공식 기록에 존재한다. 그런데 그 기록상의 셰익스피어와 문호 셰익스피어 사이를 연결하는 물적 증거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동안 학자나 연구가들이 찾아낸 셰익스피어에 관한 기록 문건은 400편이 넘는다. 거기에는 아주 세세한 기록까지 있다. 세금 안 내고 이사를 가서 추적을 당한 것부터, 남의 송사에 증인으로 불려간 기록, 직접 소송의 당사자가 된 것 등 28건이나 된다. 이 기록들을 보면 분명 ‘윌리엄 셰익스피어라는 연극계에 종사하는 인물’은 존재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위대한 극본을 쓴 우리가 아는 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라는 확실한 물적 근거는 지난 200년간 전문가들이 아무리 찾아도 없다. 공식문서에 나오는 6개의 서명은 거의 ‘문맹자의 낙서 수준(an illiterate scrawl)’이다. 교육받은 사람의 서명이라고 도저히 볼 수 없다. 쓴(written) 것이 아니라 그린(drawn) 수준이다. 유서의 내용도 의심을 더욱 불러일으킬 만하다. 유서의 내용에서 작가라고 인정할 만한 부분이 전혀 없다. 작가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소장 책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고 문장 내용도 작가가 쓴 것이라 볼 수 없을 정도로 간단하고 무의미하다. 유명한 작가가 죽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동료 연극인이나 일반인들의 애도의 글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그 외에도 옥스퍼드파가 내세우는 의문의 근거는 수도 없다.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튜더시대 당시에는 귀족들이 통속적인 향락을 위한 글들을 쓰면 안 된다는 사회적 통념이 있었다. 공식기록에 나오는, 셰익스피어가 극장 사업에 본격적으로 개입하면서 이사간 글로브극장이 있던 서덕(Southwark·보통 사우스워크라고 많이들 잘못 발음한다) 지역에는 300여개의 여관과 창녀집이 있었다. 극장이 이런 곳에 있던 이유는 연극은 점잖은 신분들이 드러내 놓고 즐길 그런 공연물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의 이야기’라는 소설 제목이 비록 파리와 런던의 두 도시를 말하는 것이긴 하지만, 런던을 이루고 있던 런던시와 서덕 두 지역을 이야기할 때도 자주 이용된다. 원래의 런던은 지금도 세계적 금융의 중심지가 소재하고 있는 ‘런던시(City of London·이때는 대문자로 City라고 쓴다)’이다. 로마군이 영국을 점령한 1000년 전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면적 2.7㎢(1평방마일)의 지역이다. 지금의 런던시(city of London·이때는 소문자로 city라고 쓴다)와는 다른 소규모의 역사적인 런던시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문자를 쓰던 당시 런던시에는 어떠한 형태로도 향락적인 시설은 들어설 수가 없었다. 생업과 관련된 건물과 주택 그리고 교회만 가득 들어선 아주 근엄한 도시였다. 1666년 런던 대화재 전 이 좁은 지역에 87개의 성당이 있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러나 당시 템스강의 유일한 다리였던 런던브리지를 건너면 전혀 다른 별천지가 펼쳐져 있었다. 소위 말하는 먹고 마시고 즐기는 향락산업이 즐비하게 있었다. 런던의 ‘먹자골목’ 지역이 서덕 지역였다. 여기가 바로 제프리 초서의 ‘캔터버리 이야기’에 나오는 성지순례가 시작되는 곳이다. 올드 런던시에서 일을 마친 사람들이 강을 건너와서 각종 향락을 즐긴 뒤 다리를 건너 다시 돌아갔다. 이 향락에 연극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귀족들은 이런 향락산업의 기초가 되는 희곡을 쓸 수가 없었다.

옥스퍼드파의 주장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당시 귀족 지식인 중에서 누군가가 쓰고 시골 촌뜨기 주정뱅이 셰익스피어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웠다는 추론이다. 진짜 작가로 지목하는 인물로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철학자, 귀족인 프랜시스 베이컨의 이름이 항상 등장한다. 그 이외에도 80여명이 넘는 귀족의 이름이 가능성 있는 작가로 거론된다. 이런 추정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영화가 2011년 토론토영화제에 나온 ‘익명(Annymouse)’이라는 영화다. 이 영화에 보면 무대에서 연극이 진행되고 있는데 밑에서는 관객들이 배우를 모독하고 작가마저도 모독한다. 이런 야간업소의 공연에 귀족이 대본을 써도 자신의 이름을 드러낼 수 없어 셰익스피어를 대신 내놓았다는 뜻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사생아가 셰익스피어 작품의 진짜 저자라는 ‘튜더 왕자(Prince Tudor)설’에 근거를 둔 흥미 본위 영화였다. 서로가 모자지간인 줄 모르는 두 사람이 애인이 된다는 기괴한 스토리의 영화였다.

옥스퍼드파는 역사적으로 상당한 지지세력도 가지고 있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찰리 채플린을 비롯해 마크 트웨인, 헨리 제임스, 토머스 하디, 월트 휘트먼, 찰스 디킨스, 존 골즈워시, 랄프 월도 에머슨, 말콤 엑스, 샤를 드골, 제임스 조이스, 헬렌 켈러가 그들이었다. 지금도 옥스퍼드파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심지어는 셰익스피어 옥스퍼드 소사이어티 주관으로 1987년 미국에서는 대법원 판사 3명이, 1987년 영국에서는 영국 대법원 판사 3명이 재판관이 된 심각한 모의재판이 각각 열리기도 했다. 두 재판 모두 문학 관련 전문가들의 참석은 배제한 채 순수하게 법률적 견지에서 양쪽에서 제출한 증거들을 가지고 판단했다. 재판 결론은 셰익스피어가 작가가 아니라는 음모설이 근거가 없다는 것이어서 옥스퍼드파의 패배로 끝났다.

이렇게 셰익스피어가 끝없이 진위논쟁에 말려 드는 이유는 그의 작품이 너무 훌륭하기 때문이다. 400년 전에 죽은 사람에 대해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져서 그에 대해 아주 많이 아는 것 같아도 세상은 셰익스피어만큼 위대한 작가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다. ‘연극계의 셰익스피어’와 ‘대문호 셰익스피어’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가 분명한 물증으로 완벽하게 증명되기 전까지는 끝없는 논쟁이 이루어질 것이다. 베일에 가려져 있는 진실이 더욱 사람들의 호기심을 진하게 자극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년간 수도 없이 많은 전문가들이 필생의 작업으로 그의 생애와 작품을 파고들었지만 그 누구도 완벽하게 증거를 내놓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의 희곡 작품이 몇 개인지에 대한 논쟁도 아직 끝을 못 냈다. 퍼스트 폴리오에 수록된 36개 이외에도 셰익스피어 희곡 2~3개가 더 있다는 주장도 여전하다.

주간조선

글쓴이 권석하

IM컨설팅 대표. 영남대학교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1980년대 초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영국에 건너가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유럽 잡지를 포함한 도서와 미디어 저작권 중개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월간 ‘뚜르드 몽드’ ‘요팅’, 도서출판 학고재 등의 편집위원도 맡았다. 케이트 폭스의 ‘영국인 발견(Watching the English·학고재)’을 번역 출간했다. 영국 국가 공인 관광가이드시험에 합격, 관광가이드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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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한 일 다시는 남들이 겪지 않게” 2014.05.14
영국의 재난 대처 방식… 피해자 단체 만들어 수십 년 진실 투쟁
모자 안 써도 처벌하던 ‘규제 왕국’ 레드테이프 웹사이트 개설하자… 2014.04.09
내가 겪은 영국의 규제개혁
연극판 촌뜨기 셰익스피어가 진짜 대문호 셰익스피어인가 2014.03.19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
영국 속의 또 다른 영국 스코틀랜드 다시 보기 2014.02.26
9월 분리 독립 투표 … 주민 과반수 독립 반대, 부결 가능성 높아
한번 팬은 죽어도 팬! 代 이은 축구팀 사랑 2014.02.05
신혼여행·취업보다 팀 응원이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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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3세 국왕 뉴몰든 첫 방문    2023.11.09   
해군 순항훈련전단, 런던한국학교서 문화공연 가져    2023.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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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차보험료 사상 최고 기록
제 22대 국선 재외선거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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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의 웨스트 엔드 진출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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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감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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