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잘 지내고 계세요? 하늘나라는 편한가요?”
내 나이 열둘에 처음 숨쉬지 않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바로 제 외할아버지입니다.
곧은 자세로 누워계시던 그 모습은 고인이 되기 전 자신의 성격을 그대로 갖추고 계셨습니다. 누가 양반 아니랄까봐 편히 감은 눈과 곧은 입매, 두 손을 곱게 포개 가슴에 올려놓은 두 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였습니다. 내가 살던 집은 외가댁과 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말엔 항상 외가댁에 가서 먹고 자고 하기를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내가 외가댁을 항상 드나든 것은 외할아버지의 작은 선물 때문이었습니다. 뭐냐구요?
병입니다.
질병이 아니라 음료수나 술병들이었습니다. 겨우 ‘병이 선물이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티끌모아 태산’. 병이 한두 개씩 모이기 시작하면 어린 내가 주말동안 좋아하는 오락을 실컷하고도 남을 돈이 생기는 꽤 짭짤한 수입이었죠.
외할아버지는 샤니라는 제과회사에 다니셨습니다. 그래서 인지 항상 퇴근해 집에 오실 때는 맛있는 빵을 한보따리씩 싸들고 오셨다고 어머니가 말씀해 주셨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옛날 사람답게 여자는 남자에게 복종하면서 집안일을 해야 하며, 남자는 돈을 벌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보수적인 사고를 가지신 분이셨습니다.
그런 외할아버지가 내 나이 아홉에 갑자기 병으로 쓰러져 집에서 누워계시게 되셨습니다. 그때부터 외할아버지는 병을 줍기 시작하셨습니다. 말로는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 운동이라고 하셨지만 가장이 집에서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셨던 듯 합니다. 물론 그때부터 나의 짭짤한 수입은 시작됐습니다.
주말 하교하자마자 가방을 메고 외가댁으로 달려갔던 저는 신발도 벗지 않고 외할아버지가 누워계신 방으로 기어 올라가 “할부지 병은? 이번 주에는 많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항상 웃는 얼굴로 병석에 누우신 채로 “당연하지. 우리 외손주 줄라꼬 윽스로 많이 모아놨다 아니가”하곤 하셨다.
그렇게 2년이 지났을 때쯤 할아버지의 건강은 더욱 나빠지셨다. 의사말에 따르면 아픈 몸을 무리하게 움직여서 더욱 나빠진 거였답니다.
그런 것도 모르고 나는 계속 졸랐습니다.
“할아버지 이번 주는 왜 이렇게 병이 작은거야” 그러면 외할아버지는 “미안하다. 할베가 이번에는 많이 못 모았네. 우짜노 우리 외손주 하고싶은 오락 많이 못해서”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리고 1년 후 하교 길에 집으로 가니 아무도 없고 어머니가 남기신 쪽지 한 장이 놓여 있었습니다.
‘외할아버지가 위독하시단다. 우리 태훈이가 보고싶으시다네. 이거 보면 바로 외가댁으로 온나’
숨이 터져라 뛰었습니다. 뛰어가는데 눈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어머니가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태훈아 할아버지 몸 안 좋으시니까 이제 주말에 가서 병 모으는 거 그만하라고 부탁드려라. 할아버지 저러시다 정말 큰일 난다. 알겠제?”
그때마다 나는 “안돼요. 할아버지가 병 안 모으면 나는 주말에 오락 못한단 말야”라며 그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달려가는 내내 이 생각났습니다. ‘그때 내가 말렸으면 이렇게 빨리 많이 아프지는 않았을텐데’
외할아버지는 누워계셨습니다. 아무 말도 아무 표정도 없으셨습니다.
“할아버지 일어나. 내 병 주워줘야지”하며 울부짖었습니다.
그런 나를 꼭 안아주시며 어머니가 울먹이며 말씀하셨습니다.
“태훈아 할아버지 하늘나라로 가셨다. 이제 우리 태훈이 병 모아줄 사람 없어서 어떻하노”
펑펑 울었습니다. 꼭 나 때문에 훨씬 일찍 하늘나라로 가신 것 같아 펑펑 울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난 뒤에 외할아버지의 곱게 포개진 손 사이에 끼어 있는 흰 종이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외할아버지가 남기신 마지막 글이었습니다. 흔히 유언장이라고 하는 것인데 평소 얼마나 검소하셨으면 껌종이 몇 장을 풀로 붙여서 힘없는 손으로 쓰신 것이었습니다.
가족들 모두가 진정하고 그 종이를 펼쳐보자마자 집안은 다시 한 번 울음바다로 변해버렸습니다.
‘사망신고서’ 그리고 ‘태훈이 병’
살아생전에도 가족을 너무도 아끼고 사랑하셨던 그분. 그리고 자신의 일을 남에게 절대로 미루지 않고 미리미리 해두시던 성격의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사망신고서’는 직접 준비하실 수가 없으셨나 봅니다. 그리고 돌아가시고 나서 내가 병을 찾을까 걱정이 되어 ‘태훈이 병’이라는 글을 써두셨나 봅니다.
물론 그 후로 날 위해 병을 모아줄 사람은 없었고 대신 어머니가 주말마다 약간의 용돈을 주셨습니다. 병은 아니지만 어머니는 자신 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지키고 싶었던 것이겠죠.
스물일곱 어린 나이에 가정을 이룬 제게 주신 외할아버지의 선물은 가족을 사랑하고 지키는 방법을 몸소 보여주신 모범이 아닐까 합니다. 그 기억 영원히 잊지 않고 간직해 당신에게 다시 돌아갈게요.
“할아버지 저예요! 태훈이~ 하늘나라엔 병 많아요? 저 갈 때까지는 푹 쉬세요. 할아버지랑 맛있는 거 사먹을 만큼 제가 병 많이 모아서 갈게요”
“사랑해요 할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