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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창간 25주년 기념 특별기고
코리안위클리  2016/03/19, 02:05:12   
▲ 코리안위클리 창간 25주년을 기념하는 축하문을 쓰는 지금, 필자의 가슴이 영국 곳곳에 시나브로 꽃망울 터져오르는 수선화처럼 환희와 감격으로만 온전히 채워지지 않는 까닭은 작금의 한인사회가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한 책무를 안겨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선화 피는 계절, 또 다시 당신들을 생각하며

“참으로 오랜 세월이 흐른 뒤, 헤어졌던 젊은 날의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떨리는 가슴 부여안고 이 글을 씁니다. 먼저는 창간 14주년인 2005년의 이 봄에 지령 700호를 맞이하는 코리안위클리의 늠름한 오늘을 축하하는 글을 멀리 고국에서나마 다시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16년 코리안위클리 창간 25주년의 해, 지령1250호를 기념하는 이 축하문을 쓰는 지금, 11년 전 귀지에 실린 필자의 축하문, ‘수선화 피는 계절, 당신들을 생각하며’(코리안위클리 2005년3월3일자)를 씁쓸하게 들쳐봅니다. 오늘 또 다시 쓰는 이 축하문 제목을 ‘또 다시’를 끼워 넣어 구태여 ‘수선화 피는 계절, 또 다시 당신들을 생각하며’로 정하면서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옛말이 왜 이토록 심사를 괴롭히며 절절히 필자의 가슴을 후려치는 것일까요?
피고지는 수선화의 빛깔과 향기는 가는 세월의 평온하고 예사로운 흐름에도 변함없지만, ‘수선화 피는 계절, 또 다시 당신들을 생각하며’의 ‘당신들’ 중 그 누구들은 지난 11년 세월의 흐름 속에서 옛시조의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人傑은 간 곳 없네’처럼 이미 이 지상에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그 긴 세월의 여정 속에서 이미 가신 이민 1세대 고인들 대신 코리안위클리의 충실한 독자군이 새로이 등장, ‘당신들’의 대열에 합류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새로운 독자층이라는 흐름을 차지하는 지류의 큰 줄기가 1997년 이후 영국섬에 늘어나고 있는 중국거주 조선족 이주민동포와 탈북난민 등 총 1,500여명의 조선족 및 북한 동포들이라는 것은 뉴몰든 코리아타운을 포함한 영국 내 최고 5만여 명(보통 영국 내 교민 숫자는 킹스턴 지역과 인근 타 지역까지 합해 3만5천여 명 선으로 알려져 있지만, 더 큰 개념인 재영국 한인동포 수는 한국 외교부 통계 2014년 말 재외동포수가 40,263명<영주권자10,992명, 일반체류자 7,916명, 유학생13,599명 여기에 시민권자8,467명>으로 나타난다. 또 지난 10여 년 사이 조선족과 탈북난민들이 유입되면서 뉴몰든과 영국땅 곳곳에 최고 1,000명 정도로 추정되는 조선족과 850명 정도로 추정되는 탈북자도 거주하고 있다. 여기에 통계에서 빠진 단기어학 연수생까지 합하고, 영국의 이민법 고려 1년 이상 지난 현재 시민권자가 지난 한 해 더욱 증가했을 것이니, 이것을 고려하면 2016년 현재 대략 재영 한인동포는 모두 비공식 최고 5만여 명선을 상회한다고 추정한다)에 이르는 한인 동포사회에 기대와 우려를 함께 몰고 오고 있기도 합니다.
게다가 필자가 첫 축하문을 띄운 2005년의 봄부터 따지면 2016년의 이 봄까지 코리안위클리가 존경하는 독자분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11차례의 봄을 더 맞이한 이곳 영국섬을 비롯해 멀리 고국 땅 한반도 등 지구촌 곳곳에선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은 변화와 변동, 변천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2007년 세밑부터 뉴몰든을 중심으로 한 재영 한인동포 사회에 휘몰아친 때아닌 한인회장 선거관련 소송 역병에, 또 한인회 명칭을 둘러싼 제2, 제3의 한인회 난립사태, 그리고 특히 동포 언론사 간 비방전 등으로 한인사회 구성원 여러분들은 지난 9년 세월을 모두들 대책없는 나날에 무기력을 한탄하며 숨죽여 살아왔을 것입니다.
경찰이 동원되는 수차례의 폭력사태에 끊임없이 치고받는 법정 소송병의 원인을 살피는 정확한 진단과 그 치유가 상금도 시급합니다. 공동사회 내 갈등과 불화, 분규, 반목이 고질痼疾이 된 채 서로 물고뜯어 쓰리고 아린 깊은 생채기가 아물지 않아 지금도 양식 있는 한인동포들의 가슴에 피멍을 들게 하는 점에서 지난 십여 년 세월은 한인사회의 귀와 입이자 파수꾼이기도 한 귀지 코리안위클리에게 무엇을 기대해왔을까요?
지난 1991년 초여름 7월11일, A4용지 4매 정도의 창간호가 나온 이래 2011년 무엇보다 성년이 되었음을 이르는 약관弱冠 20세를 훨씬 지나 스스로 기반 닦아 자립해서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립而立의 30세로 향하는 고갯길 어귀 25세에 성큼 의연하게도 접어들어 올해 창간 25주년을 맞이한 코리안위클리에게 작금의 한인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한 책무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2005년 그때에도 수선화 피는 계절에 의미 있는 날을 맞게 된 코리안위클리와 독자분들을 생각하며 지령700호 발행의 감격과 그 기쁨을, 윌리엄 워즈워드가 ‘수선화’라는 시에서 읊었던 것처럼, ‘하늘 높이 골짜기와 언덕 위를 떠도는 구름처럼 헤매는’ 필자의 가슴 속 호수가에 줄지어 뻗쳐있는 수선화들이 환호작약 추어대는 환희의 춤으로 다가 온다고 썼지요.
호숫가에 무리지어 피어 있는 화안한 금빛 수선화가 시인의 마음을 황금빛 충일감으로 물들이듯, 당시 창간 후 14년 세월을 꿋꿋이 버텨온 연부역강年富力强 코리안위클리의 용기와 노력에 연서쓰듯 필자의 마음도 기쁨에 넘쳐 수선화와 함께 춤을 추었던 것입니다. 지난 2000년1월, 영국땅에서의 10년 유목민 세월을 접고 영국섬을 떠나오기 전, 2년 반 동안 고정컬럼 ‘서풍부(西風賦)’를 귀지에 연재했었기에 지령700호에 부쳤던 편지는 헤어진 연인에게 다시 떨리는 가슴으로 쓴 것처럼 감격어린 연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창간25주년 2016년의 3월, 코리안위클리 지령1250호를 기념하는 이 축하문을 쓰는 지금, 필자의 가슴이 영국땅 산야 곳곳에 시나브로 꽃망울 터져오르는 수선화처럼 환희와 감격으로만 온전히 채워지지 않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요?
주영 한인회장과 한국학교 교장을 지낸 제1세대 교민 주낙군 원로의 매서운 지적이 대나무 회초리처럼 가슴을 후려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좁은 한인사회에 6개나 되는 동포언론사가 있으면서도 한인회장 부정선거 시비를 둘러싼 작금의 사태확산을 미연에 여론화시켜 방지하지 못한 것에서 동포언론은 그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동포들이 같이 함께 살아가는 데 길잡이 등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언론의 정도를 외면한다면 신문이 아닌 한갓 광고전단지로 추락하고 말 것이다.”
유럽 내 유일한 Korea Town 뉴몰든을 중심으로 킹스턴 왕실자치구(Royal Borough of Kingston upon Thames)와 머튼(Merton) 두 자치구 관내에 유럽에서 가장 많은 무려 3만5천여 명의 한국인들(공식통계로는 킹스턴자치구 2014년 Census; 자치구인구 169,958명. 기타 아시아인으로 분류된 한인동포 비율이 8.1%)이 함께 모여살아 여러 이익집단의 생성, 소멸, 교차 속에서 최신정보와 전문뉴스를 담는 그릇이 필요하긴 합니다.
그러나 자기입맛에 따라 생겨났다가 소리없이 사라지는 현재 대부분의 재영 동포신문들은 발행인이나 소유주의 개인적 발언대에 불과합니다. 더러는 자신들의 명예욕이나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고, 나아가 동포사회에서 자신의 대외적 발언권을 높이고 자신들의 치부를 방어하며 경쟁자를 비난하기 위해 마구 불어대는 나팔로 악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귀지 코리안위클리의 고고하고 지난한 행군이 크게 돋보이면서도 안쓰러운 것은 비단 필자의 감상벽感傷癖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1991년 7월 11일 창간호
1991년 7월 11일 창간호
 돌이켜보면 한인동포의 본격적 영국이주가 시작되는 초기 1991년7월11일 창간된 코리안위클리는 A4용지 4매로 시작했지만, 2003년 4월 창간12돌 및 지령600호부터 붉은색 제호를 쓰고 지면 증·개편을 단행하면서 도약단계를 맞습니다. 안정감있는 변형된 고딕 한글서체의 붉은색 제호는 나부끼는 깃발, 흐르는 강물을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현대 첨단사회의 흐름과 변화를 여유롭게 읽어낸다는 의지와 함께 도전정신을 상징하며 이국에서의 삶을 서로 돕고 어울려 살아간다는 의지도 담고 있다’는 귀지의 개편 당일 자평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읽기 편하고 각종 삽화와 컷을 곁들여 지루하지 않은 편집도안에 깔끔한 신문으로 거듭난 귀지는 영국은 물론 유럽, 나아가 재외동포 750만 시대 전 세계 500여 한인 동포언론사들의 그 어느 신문과 달라 질과 양에서 단연 앞서갔습니다. 고심어린 기사의 취사선택, 균형 있는 다양한 정보제공과 최신 종합뉴스 보도, 그리고 무엇보다 지역사회의 각종 공익증진행사 참가·후원 등의 빛나는 역사가 그것을 여실히 증명합니다.
△2003년 ‘밝은사회운동 영국본부’와 코리안위클리의 뉴몰든 하이스트리트 성탄절 전등장식 모금캠페인 △2015년 569돌 한글날 기념 24회 재영한글학교 글짓기대회 개최후원 △민주평통 영국협의회 평화통일염원 협의회 걷기축제 후원 등이 지역 및 한인사회의 각종행사 참여 및 후원의 최근 예라면 △2014년 한국 국사편찬위가 주관하는 ‘유럽한인사’ 발간사업 관련 영국 및 유럽한인 역사 수집 자료로 코리안위클리가 채택된 것은 귀지의 권위와 성가를 국가기관이 공인하는 쾌거이기도해서 큰 박수를 보냅니다.
한국의 기간통신사 연합뉴스와 기사·사진·콘텐츠 사용특약을 맺어 뉴스취재원을 떳떳하고 공정하게 밝혀 정확한 기사를 제공하는 귀지는 그래서 매호마다 41면 하단에 ‘공정하고 성실한 동포신문’이라는 모토로 ‘역시 그 친구가 옳았어!’라는 그 격려의 말을 계속 듣기위한 자아 담금질을 양심 고백하듯 엄숙히 선언하고 있음을 독자들은 마음 든든히 지켜보는 것입니다.
△“주류사회에 전문직으로 진출해서 영국사회에 공헌하다. 영국의사가 2015년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읽은 논문(어린이비만에 대한 부모의 인식) 박민혜(31세)가 쓰다”(본지 2016년2월3일자) △“이민 25년 만에 최초의 시민상 Community Award 이난주씨 수상 - 킹스턴시 공식역사에 기록”△“킹스턴 경찰당국 한인사회에 응당의 역할 기회부여 노력--킹스턴 경찰관 채용 등에 실패. 한인사회가 제 규모에 맞는 제 목소리 제대로 내지 못한다” △“영국 초밥왕 김동현사장을 아시나요?(2015년1월7일자 -데일리텔리그라프 1월4일자 인용보도) △ “영국, 떠나야하나? 유럽 최대 한인타운이 흔들리고 있다.”(권석하. IM컨설팅 대표. 칼럼니스트, 2010년10월30일자) 등의 기사는 지난 수년 사이 귀지가 발굴 또는 전재·보도한 귀중한 정보 및 기사들입니다.
이밖에도 귀지가 다른 대부분 동포지와 크게 차별되는 것으로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강점이 있습니다. 주류신문들처럼 사설은 아니더라도 발행인이 주요 사안에 조심스럽게 의견을 표명하는 것도 높이 사지만, 현재 귀지 온라인판에 칼럼니스트로 등록돼 있는 16명 각 분야 전문가들이 채워가는 칼럼이 정말 다채롭다는 것입니다.
‘영국이민칼럼’(서요한, 2009년2월14일 연재시작), ‘청소년과 정신건강’(우이혁 영국정신과 전문의. 2012년1월19일 시작), ‘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Birkbeck대 경영학박사, 2012년2월29일 연재시작) 등 활발하게 매주 연재가 계속되는 칼럼은 5개에 그치고 있으나, 앞으로 영국사회에서 이미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이민 2, 3세대의 지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물론 정치·사회·경제·문화 등 각종 첨단분야의 지적성과를 독자들이 귀지의 지면을 통해 광범위하게 누릴 수 있길 기원해봅니다.
지난 2005년 지령700호에서도 귀지의 보석같은 두 칼럼니스트로 김남교, 김은혁 두 분을 언급한 바 있는데, 오늘 이 글을 쓰면서 필자의 가슴을 이리도 아프게 하는 것은 한 분이 이미 고인이 돼 더 이상 뵐 수 없다는 세월의 냉혹함입니다. 지난 2012년 1월19일 유명을 달리한 고인 김남교 칼럼니스트(1940∼2012년. 1983년 영국 이주)는 원로교민으로 귀지에 2000년10월 ‘영국의 교육제도’에 대한 투고를 시작으로 11년 이상 단 한 주도 빠짐없이 글을 썼는데 방대한 정보수집 능력과 날카로운 분석·시선으로 영국과 한국을 비교하며 여러 방면에 깊이 있는 글을 쓰면서 많은 이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고인을 오늘 이 지면을 통해 우리 모두가 깊이 애도하는 이유는 고인이 수많은 칼럼을 통해 끊임없이 한인 동포자녀들을 향해 밝은 희망을 이야기하며, 동포 한국인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맑은 시선을 늘 간직했다는 점입니다.
귀지가 이처럼 다져오고 쌓아온 귀중하고 자랑스러운 자취와 기록은 그래서 빛나는 훈장임에 틀림없지만, 그러나 무릇 독자들은 인기스타의 뒤를 그리도 광신자처럼 좇다가도 그들의 일탈, 추락을 즐기기도하는 팬덤(fandom)처럼 변덕스러워 코리안위클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앞날을 눈부릅뜨고 지켜볼 것입니다.
지금 봄을 알리는 수선화의 황금빛 꽃봉오리들이 뉴몰든 녹지대나 독자 여러분 집 뒤 정원이며 영국섬에서 가장 큰, 킹스턴자치구 내 리치몬드파크 숲속 오솔길 풀섶마다 노오란 호롱불 불꽃처럼, 또는 뽀얀 솜털 빛나는 햇병아리처럼, 아니 수많은 금빛 골든벨처럼, 타오르고 하늘거리고 울려댈 겁니다.
수선화(학명;Narcissus)의 속명이 고대 그리스신화 속 등장인물 나르시스(나르키소스;Narcissus)에서 비롯돼 ‘자기사랑, 자기주의, 자존심, 고결, 신비’ 등이라는 것은 다 알려진 것이지만, 귀지가 결코 자기도취(narcissism), 자만에 빠진 미소년 ‘나르시스’처럼 오만한 꽃 수선화로만 남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시인 나희덕의 <문화산책> 글편 ‘수선화를 기림’에서 발견한 경구는 수선화 꽃밭을 거니는 독자 여러분은 물론, 지령 1250호를 기념하는 귀지에게 참으로 은혜로운 선물이기를 바랍니다.

“깊은 땅 속의 어둠과 추위가 그렇게 환한 등불과도 같은 꽃을 피우게 했을까……. 그래서 수선화는 때로 자기도취에 빠진 오만한 꽃으로, 죽음에 이르는 비극적 사랑의 표상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내게는 수선화가 ‘네 자신을 잘 들여다보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네 속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라고. 수선화는 여섯 장의 꽃잎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중에는 ‘부관副冠’이라 불리는 속꽃이 붙어있다. 꽃 속의 꽃. 이 ‘속꽃’이야말로 수선화만의 또 다른 눈이 아닐까 싶다. 흔히 자기 자신을 바라볼 줄 아는 재귀적 인식능력은 사람에게만 주어진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 고결한 꽃은 아주 오래 전부터 그런 지혜를 터득한 것처럼 보인다…….

워즈워스는 ‘수선화’라는 시에서 ‘은하에서 빛나며 반짝이는 별처럼/ 물가를 따라 끝없이 줄지어 피어 있는 수선화’를 보았노라고 노래했다. 그러나 그의 가슴이 수선화와 더불어 환희의 춤을 춘 것은 한참 시간이 흐른 뒤였다고 고백한다. ‘하염없이 홀로 생각에 잠겨 내 자리에 누우면/ 고독의 축복인 속눈으로 홀연 번뜩이는 수선화’라고 말이다. 여기서 ‘속눈’이란 고독 속으로 깊이 침잠하면서 열리는 마음의 눈일 것이다”
한영 수교 133년 세월 속에 본격적인 영국 이민역사 반세기에 이른 오늘날에도 이민 1세대는 자신들의 서럽고 지난했던 이민정착 분투기를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보배로운 칼처럼 내세우며 아집과 체면 중시, 자기과시욕, 파당 짓기, 분란 등의 검은 실타래에 서로 얽혀들어 단단히 묶여있습니다. 이민 1세대가 ‘속눈’이 아닌 ‘겉눈’으로만 바라보는 수선화의 숨겨진 어두운 속성 ‘나르시시즘’에만 빠져 배타적·부정적 이데올로기가 뉴몰든 거리 곳곳에 꽈리를 틀고 있다면, 겉눈만을 뜨고 한인동포 내부의 힘겨루기 분열에만 묶여 있다면, ‘한인회 무용론’이라는 구성원들의 자조를 부추길 뿐 과연 무슨 희망과 미래가 새로운 차세대가 살아가야 할 재영 한인동포사회에 있을 수 있을까요?
조직과 자기 이기주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불완전한, 불안한 한인회 조직은 본국정부가 지난 8년 동안 지정한 분규단체의 오명을 지닌 채 결코 정상화의 돌파구를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자라나는 미래세대는 조국에 대한, 또 이민 1세대에 대한 좌절과 낙담으로 절망의 먹구름 속에 휘말려 존재없이 영국 주류사회에 함몰돼 버릴 것입니다.
이제 영국 주류사회 곳곳에서 괄목할만하게 성장한 이민 1.5내지 2~3세대들이 새로운 이민철학을 바탕으로 단단히 무장해 앞으로도 험난하게 이어질 영국땅에서의 삶의 경주에서 바통을 이어받아 외부로 눈을 돌려 그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전문성과 역동성을 마음껏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
조선족 및 북한 탈북동포까지 아우르는 대연합 열린 동포공동체 터다지기가 먼접니다. 그리고 영국 원주민들과 다른 유색 이민족까지 함께하는 다문화 지역사회 정착을 다지는 시민행사와 봉사활동에, 나아가 제2의 고향이 된 영국사회의 일원으로서 정치적 역량을 키우고 떳떳이 피와 땀 흘리는 데 젊고 새로운 차세대 한인 젊은이들이 주체적으로 적극 참여한다면, 한 때 전세계 재외동포사회에서 가장 모범적인 한인회 활동으로 칭송받았던 영국 한인사회는 자신들을 갉아먹는 내부분열에서 벗어나 기적처럼 그렇게 봄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 신나는 바람을 누가 불게 할 것인가. 말할 것도 없이 창간 25주년의 해, 지령1250호를 맞은 코리안위클리입니다. 이제는 고국등진, 뿌리 버린 유목민으로서가 아니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단단히 주춧돌로 다진 뒤, 자랑스러운 정주인定住人으로서 건강한 한국계 영국시민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차분한 벽돌쌓기에 귀지의 적극적 선도가 필요할 때입니다. 단순한 정보 나열지가 아닌 귀지가 언론 고유의 빛과 소금 역할을 발휘할 분야는 무엇이겠습니까.
먼저 이민 1세대들의 아집과 분열, 반목의 단단한 껍질을 깨뜨려 분쟁 당자자들이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서로 자신들의 허물을 돌아보고 양보의 미덕을 발휘할 수 있도록 양식있는 원로들의 조언을 받들어 소조직, 직능 단체들의 힘을 함께 모아 도덕재무장 운동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그리고 영국땅 ‘디아스포라’ 생활에서 우리 내부의 민족혼을 부단히 일깨워 한민족, 한겨레로서 진정한 정체성 확립에 동포사회를 한데 묶는 화합의 끈 역할로서 모국어 한글교육입니다. 이 반석 위에 한인 이민 2세대, 3세대가 주류사회에서 정치적 발언권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동포언론사들을 한데 묶어 영국 내 정치·이익단체를 향해 압력단체로서 우렁찬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공동 연대작업이, 날로 영국정부가 이민정책의 단단한 고삐를 조이는 이 험난한 시점에서 가장 요구되는 핵심적 책무일 것입니다.
이 축하문을 시작할 땐 심사 괴롭게 가슴 후려치는 막막함, 비애를 느꼈지만, 이제는 ‘속눈’ 지닌 수선화처럼 제 속을 들여다보는 자아인식을 바탕으로 서서히 가슴뛰는 설렘을 맞습니다. 필자의 지난날 고정칼럼 ‘서풍부西風賦’의 마지막 구절을 잠시 바꿔 읊어봅시다. 귀지 코리안위클리가 10세기이전 앵글로색슨 시절부터 ‘언덕 위의 십자가’(New Malden의 전신 Old Malden ; 고영어 Mæ+duna=The Cross on the hill)로 알려진 영국땅 뉴몰든 내 ‘한국 공화국’에서, 아니 이 영국땅에서 그 언제까지나 한인 동포사회를 격려하고 성원하는 ‘십자가’이며, 등대가 될 것임을, 서풍부의 그 힘찬 예언의 나팔소리에 맞춰, 우리 함께 믿게 됩니다.

“지난 9년 동안 재영 한인 동포사회는 부패와 허위, 부정과 탐욕으로 도덕의 주춧돌이 허물어져 내리고 법과 질서의 기둥들이 뽑혀졌다. 자, 우리 다시 한 번 한인 동포사회를 향해 기도하는 심정으로 셸리의 ‘서풍부’(Ode to the West Wind. 1819년 영국의 낭만파 시인 P.B Shelley가 새 시대를 갈구하면서 예언의 나팔을 울려주도록 서풍에 호소한 ‘서풍에 부치는 송시’. 여기서 서풍은 자기희생, 심지어 창조를 위한 자기파괴를 만드는 영감과 변화의 동력이다.)를 읊어보자. 「아직 깨어나지 않은 화로에서 나오는 재와 불씨같이」 매 주마다 코리안위클리가 독자와 함께 읊게 될 서풍부는 아직 깨어나지 못한 뉴몰든 코리아타운에 활활 타오르는 혁신과 화합의 불꽃 돌개바람을 휘몰아가면서 예언의 나팔을 불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자. 우리 모두 한인 동포사회에 스며들어 있는 시든 잎사귀와 같은 낡은 사고를 새바람으로 몰아내어 뉴몰든 코리아타운에 새 시대의 탄생을 재촉하자. 오! 서풍이여, 겨울이 오면 어이 봄은 멀 것인가?(O Wind, 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


글쓴이 한 준 엽
joonyeobhan@msn.com
전 주미공보공사
전 해외홍보원장
주영 시사저널 특파원1992~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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