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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 이야기 ⑫ 백야의 기록을 마치며
코리안위클리  2013/03/20, 06:31:52   
▲ 마지막 픽업 지점에서 헬기를 기다리고 있는 썰매개들과 배영록 대원

모든 탐험은 돌아온 뒤에야 비로소 시작된다

마지막 에어드롭, 탐험 종료
7월 18일, 밤늦게 탐험대와 연락이 닿았다. 애초 계획했던 탐험 일정보다 며칠이 더 늦어져 식량도 이미 바닥이 난 상태다. 대원들도 썰매개들도 탈진 상태가 되어 약속 지점까지 행군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일까지는 꼭 최종 좌표에 도달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힘내라’는 한 마디뿐. 약속 지점을 재차 확인하고 나자 갑자기 정동영 대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올 때 비스킷하고 롤빵 좀 사다줘.” 그리고는 너무 허기져서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늘 맑고 또박또박하게 말하던 경상도 사나이의 목소리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마음이 짠해졌다.
눈을 뜨자마자 까낙에서 하나밖에 없는 슈퍼마켓으로 달려가 정동영 대원이 부탁한 빵과 비스킷, 그리고 음료수와 고기를 샀다. 그리고 까낙 주민에게서 차를 빌려 공항으로 향했다. 7월 19일 오후 1시 20분, 까낙 공항에 도착했지만 헬기의 기술적인 결함으로 인해 두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이제나 저제나 하며 눈이 빠지게 헬기를 기다리고 있을 탐험대의 모습을 생각하니 초조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대원들과 썰매개들에게 음식을 먹이고 싶은데……. 탐험의 막바지에 이른 긴장 탓인지 나의 몸은 감기 기운으로 죽을 맛이었고, 초조함 때문에 가슴은 쉴 새 없이 쿵쿵 뛰었다.
헬기가 뜰 수 있을까? 만일 오늘 헬기가 뜨지 못한다면 끝장이다. 오늘 픽업에 반드시 성공해야만 내일 베이스캠프인 일루리사트로 돌아갈 수 있다. 만일 실패한다면 이곳에서 또 다시 일주일을 더 기다려야 한다(까낙의 항공편은 주 1회뿐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일정이 꼬이게 되고 이미 탐험대의 예산이 바닥난 상태라 더 이상 추가 경비를 지불할 수도 없다.
또 하나의 고민은 에어드롭이었다. 짐의 부피와 무게로 봤을 때 1회 비행으로 끝내기엔 다소 무리였던 것이다. 하지만 돈이 없어 2회 비행으로 할 수도 없었다. 혼자 애를 태우는 동안 드디어 툴레 에어 베이스에서 헬기가 날아왔다. 파일럿이 두 명이었는데 그중 한 명은 놀랍게도 1차 에어드롭 때 만난 피터였다. 나는 에어드롭을 한 번에 끝낼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하다시피 했다. 다행히 피터는 최선을 다해 도와주겠다고 대답했다.
돌아올 때의 부피와 무게를 줄이고자 촬영 감독만 헬기에 태우고 나는 공항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비스킷과 롤빵을 촬영감독에게 전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침내 헬기가 떠올라 픽업 지점을 향해 내륙빙하로 날아갔다. 그로부터 2시간 반 동안 나는 몸살과 초조함으로 덜덜 떨며 공항 상황실에 바싹 붙어 앉아 대원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도했다. 한참 뒤 헬기 소리보다 무전기에서 피터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10분 뒤에 도착!” 아, 픽업에 성공했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 마지막 10분조차 내게는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 드디어 헬기가 착륙하고 프로펠러가 멈추자 대원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정신없이 달려가 정동영, 배영록 대원을 부둥켜안았다. 그렇지 않아도 마른 체구인데 탈진상태까지 갔던 몸이라 뼈밖에 안 남은 것 같았다. 길게 자란 수염과 검게 그을린 얼굴도 낯설기만 했다. 썰매개들도 지쳐있긴 마찬가지였다.
지난 53일간 대원들과 썰매개들은 숱한 크레바스와 얼음 슬러지, 화이트아웃과 블리자드를 헤쳐 왔다. 그동안 나는 그린란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물품조달과 에어드롭을 진행해왔다. 서로 다른 루트에서 각기 제 몫의 탐험을 해온 셈이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까낙 공항에서 우리 모두의 원정을 함께 마무리한 것이다.

▲ 탐험을 마치고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는 홍대장

▲ 탐험을 마치고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는 홍대장

 
까낙이여, 안녕
이제 까낙에서는 탐험대의 썰매개들을 인계하는 일만 남았다. 애초에 계획했던 대로 썰매개들은 일루리사트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 까낙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녀석들을 보살펴줄 사람은 마마우트였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마마우트, 이 개들을 정말 잘 부탁드립니다. 이 녀석들이 없었다면 우리 탐험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최대한 배불리 먹고 편히 살 수 있게 해주십시오.” 마마우트는 걱정 말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개들이 몹시 말랐군.” 그는 창고 문을 활짝 열어 쌓아둔 고래 고기를 아낌없이 꺼냈다. 그리고 썰매개들을 향해 차례차례 고기를 던져주었다. 그 동안 허기와 피로에 지쳤던 썰매개들은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정신 없이 고래 고기를 삼켜댔다. 일루리사트의 썰매개들은 평생 고래 고기 맛을 볼 수 없다. 하지만 까낙에 남는 이 녀석들은 귀한 일각고래 고기도 먹으며 까낙 최고의 사냥꾼과 여생을 함께 할 것이고, 또 여기서 새로운 일가를 이루게 될 것이다. 그린란드 북극권 최남단에서 최북단까지 그 험한 내륙빙하를 온몸으로 달려온 썰매개의 혈통이 이곳 까낙에서 다시 이어지는 것이다. 부디 훌륭한 썰매개로 살아남아 까낙의 위대한 유산이 되기를......
숙소로 돌아와 오랜만에 빙 둘러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나는 대원들을 위해 고래 고기와 돼지고기, 그리고 전투식량으로 푸짐한 저녁을 준비했다. 하지만 대원들은 생각만큼 많이 먹지 못했다. 모처럼 먹는 정찬이 부대끼는지 수저를 내려놓자마자 소화제부터 찾았다. 할 이야기는 산더미처럼 많았지만 일단은 모두가 숙면을 취하는 게 우선이었다.
간만에 대원들과 나란히 누웠다. 백야의 빛을 가리기 위해 안대를 쓰고 잠든 대원들을 보며 나는 비로소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 끝났다.’
마음속엔 탐험기간 동안 기록했던 일기보다 몇 십 배나 더 많은 생각들이 남겨졌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홀가분히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내일부터는 아침 일찍 일어나 좌표 확인을 위한 전화를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탐험일지에는 ‘끝’이라고 적게 될 것이다. 이제 그린란드 정부와 경찰서 등 관련 기간에 탐험이 종료되었다는 보고서를 보내는 일만 남았다.
다음 날 나는 오전 나절 동안 마마우트와 기디언, 마리우스 등 까낙에서 정들었던 친구들과 일일이 작별인사를 하느라 분주했다. 기디언은 특별히 우리에게 선물로 마딱을 듬뿍 안겨주기까지 했다. 함께 고래 사냥을 떠났던 꼬마 삐치는 공항에서 내 손에 뭔가를 쥐어주었다. 펴보니 까낙의 기념품 열쇠고리였다. 쑥스러운 표정으로 아빠 뒤에 가서 숨는 녀석을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공항에서 작별인사와 기념촬영을 다 끝내자 비포장 활주로를 통해 일주일에 한 번 뜨는 비행기가 착륙했다. 우리는 까낙의 주민들과 관광객이 다 내린 뒤 드디어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가 툴툴 소리를 내며 이륙할 때쯤 창밖으로 손 흔드는 까낙 친구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들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까낙이여, 안녕.’

▲ 썰매개들과의 마지막 작별 인사

▲ 썰매개들과의 마지막 작별 인사

 
꾸야나끄(Qujanaq), 그린란드!
그린란드 북쪽 지역에서는 ‘시니크’라는 단위로 거리를 잰다. 시니크는 그린란드 말로 ‘잠’이란 뜻이다. 즉 한 번 여행을 떠나서 몇 밤을 자는가에 따라 거리를 가늠하는 것이다. 이누이트의 계산에 따르자면 우리 탐험대가 걸었던 원정 루트는 ‘53 시니크’가 되는 셈이다. 하지만 한국을 떠나 이곳 그린란드에서 내가 머물렀던 83일간의 시간적 거리는 왠지 ‘1 시니크’처럼 느껴진다. 지난 시간들이 마치 백야의 하늘 아래서 꾸었던 ‘한여름 밤의 꿈’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까낙을 떠나 다시 일루리사트로 돌아왔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이제 정말 이곳을 떠날 때가 왔구나.’라는 것이었다.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여전히 밝은 밤 11시, 나는 까낙에서 선물 받은 마딱을 짊어지고 일루리사트의 친구들 집을 일일이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마딱은 그린란드 어디에서나 최고의 선물이었다. 친구들은 비명을 지르며 좋아했고 남녀 할 것 없이 나를 끌어안아 주었다. 한편으로는 이것이 까낙을 다녀온 기념 선물이 아니라 그린란드를 떠나는 작별의 선물이라는 사실에 서운한 표정을 짓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린란드에서의 마지막 밤, 우리는 피터의 집에 초대받아 마지막 만찬을 함께 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조만간’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고, 앞으로 한국과 그린란드를 잇는 여러 가지 구상을 주고받았다.
숙소로 돌아오는 동안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어느새 가을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길가에 핀 꽃도 마치 한국의 가을 국화 같았다. ‘시간이 참 많이 지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은 지금 어떨까, 이제 곧 ‘깜깜한 밤’을 볼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설렌다. 한편으로는 그냥 이대로 그린란드에 눌러 앉아 살고 있는 나의 모습도 상상해 보았다.
다음 날 숙소를 정리하고 짐을 옮기려 할 때 동네 꼬마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갑자기 녀석들 틈에서 시실리아가 달려 나와 내게 안겼다. 일루리사트에서 함께 지내는 동안 ‘나노끄’라는 이름을 가장 많이 불러준 나의 꼬마 친구였다. 내가 까낙에 가 있던 일주일 동안 시실리아는 매일 숙소를 찾아와 벨을 누르고 나노끄를 찾았다고 한다. 녀석은 이제 헤어질 때라는 것을 감지했는지 내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나는 시실리아를 등에 업고 차로 걸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시실리아는 내 목을 점점 더 꼭 끌어안았다. 그 작고 여린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힘이 그대로 석별의 정이 되어 가슴을 울렸다.
“안녕, 시실리아. 나 잊지 마, 알았지?”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시실리아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그린란드에서의 마지막 작별인사였다.
2011년 7월 22일, 나는 그렇게 그린란드를 떠났다. 비행기가 눈 덮인 일루리사트 하늘 위로 떠오를 때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엉뚱한 인사를 했다.
“I see you, 그린란드.”
‘I see you’ 아바타에서 사람의 모습을 한 제이크 설리가 나비족의 네이티리를 처음 보면서 했던 말이다. 우리는 매순간 나 이외의 존재를 만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가슴을 겉도는 만남은 진정한 만남이 아닐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내면을 울리고 삶을 흔드는 그런 만남일 때 비로소 ‘I see you’라는 인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밤이 없었던 83일간의 시간을 보낸 뒤 내 몸은 그린란드를 완전히 떠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별의 순간이 되어서야 나는 ‘처음처럼’ 그린란드를 보았다. 그것은 미지의 땅이었던 그린란드가 앞으로 나의 삶을 조금씩 흔들게 될 거라는 예감과도 같은 것이었다.
‘Qujanaq, Kalaallit Nunaat! (고마워, 그린란드!)’
어느 탐험가가 말했다. 모든 탐험은 돌아온 뒤에야 비로소 시작된다고. 나는 지금 그린란드를 떠나고 있지만 나의 또 다른 탐험은 아마도 인천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 다시 시작될 것이다.

▲ 꼬마 친구 시실리아와 헤어지던 날

▲ 꼬마 친구 시실리아와 헤어지던 날

 

박 대 영 (공연예술기획자, 문화탐험가)
nanoqpark@naver.com

2011년 그린란드 탐험대의 베이스캠프 매니저로 누크, 일루리사트, 까낙 등지를 직접 오가며 현지인들의 삶과 문화를 취재하고 북극권의 자연을 영상에 담았다. 지난 7년간 공연기획자로서 세계 50여 나라와 도시에서 동시대의 문화를 탐험한 바 있고, 현재 영화 제작자의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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