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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 이야기 ④ 머나먼 출발
코리안위클리  2012/11/14, 07:40:34   
▲ 오랜 기다림도, 간절한 출발도 모두 그린란드의 하늘이 결정한다.

“여정은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이지만. 그 자체로 이미 보상이다”  - 스티브 잡스-

임마까(Immaqa), This is Greenland!

탐험가들이 가장 간절히 바라는 것은 도착이 아니라 출발이다. 에베레스트를 오르고 설원을 걷는 일은 자기 의지의 몫이지만 출발 전 아직 속세에 머물 때까지는 돈과 환경 등 너무나 많은 변수가 작용한다. 탐험의 역사가 시작될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탐험가들은 예상치 못한 수많은 문제들로 골머리를 앓았다. 아문센, 스코트, 섀클턴……, 그들은 모두 영웅이 되기 이전에 탐험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 만큼 신뢰를 지닌 인물들이었고, 그 모든 변수들을 극복한 사람들이었다. 어디 돈 문제뿐이랴? 생각지도 못한 천재지변이 시시때때로 탐험대의 발목을 잡는다. 예를 들면 우리가 바로 그런 경우다.
원정 출발을 하루 앞둔 2011년 5월 24일, 대원들이 아직 단잠에 빠져있을 때 나는 혼자 숙소를 빠져나왔다. 현지 항공예약 대행업체인 WOG(World Of Greenland)에 가서 헬기 예약만 확인하고 나면 다 끝난다. 헬기가 대원들을 출발지에 내려주면 그때부터 남쪽으로 고도 1,500m까지 이동한 뒤 그린란드 정부가 허락한 최남단 지점인 북극권(Arctic Circle, 북위 66도 33분)을 찍고, 다시 방향을 바꿔 북위 80도까지 올라간 후 남서쪽의 까낙(Qaanaaq)에서 마무리되는 약 2,500킬로미터의 기나긴 여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 내일이면 출발이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그런데 날벼락이 떨어졌다.
“헬기는 못 뜹니다.” “어어, 왜죠?”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 때문에 운항이 전면 취소됐어요.”
“그럼 언제쯤 운항이 재개됩니까?” “글쎄요, 사흘 뒤? 일주일 뒤? 알 수 없죠.”
오 마이 갓! 하늘이 길을 안 열어준단다. 무릎이 팍 꺾이고 눈앞이 캄캄해진다. 출발이 하루 지연될 때마다 대원들의 사기뿐만 아니라 경비 문제까지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게다가 하루하루 상승하는 기온 때문에 빙원이 녹아 운항에 큰 차질까지 빚어질 것이다.
숙소로 돌아와 대원들과 대책을 논의했지만 뾰족한 수는 없었다. 아이슬란드 화산재를 우리가 어찌해볼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25일, 하늘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26일, WOG에서 내일 출발할 수도 있다는 연락이 왔다. 27일, 일루리사트의 모든 항공기 운항이 다시 취소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아이슬란드 화산재가 북대서양과 그린란드 전역에 퍼져 있단다. ……지친다. 중단 없이 나아가는 것만이 탐험인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막연한 기다림을 이겨내는 것도 탐험인 것 같다. 28일, 일반 항공기들은 운항이 재개되었지만 헬기 운항은 아직 불가능하단다. 항공기는 되고 헬기는 왜 안 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에어그린란드 측에 항변을 하고 내일이면 가능하냐고 묻자 돌아오는 대답은 ‘임마까’ 한 마디뿐이었다.
“Immaqa, This is Greenland.” 이슬람권에 ‘인샬라’가 있다면 그린란드에는 ‘임마까’가 있다. ‘아마도’란 뜻이지만 ‘하늘의 뜻대로’라는 말로 받아들여진다. 발을 동동 구르는 우리와는 달리 현지인 탑승객들은 현재의 상황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임마까 라이프스타일이 몸에 밴 것이다. 에어그린란드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자연재해에 의한 피해는 누구도 보상받을 수 없다고 적혀 있었다. ‘자연’적으로 재해를 입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기다. 어디다 항변할 수도 없다. 자연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만큼 그 힘도 절대적이다.
“그린란드를 탐험하기로 했으면 이 정도쯤은 예상하고 왔어야죠.” 항공사 여직원이 말했다.
그래, 여긴 그린란드구나. 이상하게도 그제야 조금씩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탐험이란 자연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순응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이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들도 어쩌면 하늘이 길을 열어줄 때까지 좀 더 철저하게 탐험 준비를 하라는 신호일 것이다.

▲ 운항이 정지된 일루리사트 공항. 그린란드 항공은 잦은 결항으로 인해 이곳 사람들에게 ‘임마까 에어라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곤 한다.

▲ 운항이 정지된 일루리사트 공항. 그린란드 항공은 잦은 결항으로 인해 이곳 사람들에게 ‘임마까 에어라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곤 한다.

 
하늘이 길을 열어주다

헬기가 언제 뜰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다시 한 번 장비를 점검하고, 개들의 건강 상태를 체크했다. 마침 동물병원의 수의사인 산느(Sanne)가 들판에서 다른 썰매개들에게 광견병 예방접종을 하고 있었다. 우리 썰매개들도 이미 예방접종을 마친 상태였다. 이곳의 광견병은 주로 북극 여우에 의해 걸린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광견병에 걸리고 나면 개의 성질이 정반대로 바뀐다는 사실이다. 즉 온순했던 개는 공격적으로 변하고, 터프한 개들은 범생이가 되는 것이다. 광견병……, 혹시 날씨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북극여우가 화산재로 가로막힌 하늘을 깨물어서 날이 화창하게 갤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상상해봤다.
헬기가 언제 뜰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일일이 장비를 확인하고, 에어드롭 일정과 위급상황에 대한 준비 등을 최종적으로 체크하고 있던 차에 항공사 측과 연락이 닿았다. 잘하면 내일 헬기가 뜰 수 있을 것 같단다. 물론 ‘임마까’를 전제로 하는 얘기지만 그래도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이곳에 온지 벌써 20여 일이 지났고 원정 본대가 도착한지는 보름이 지났다. 한국으로부터 약 8,000km 이상 떨어진 이곳에서 다시 먼 길을 떠나기까지 너무 긴 시간이 걸렸다.
2011년 5월 29일 드디어 하늘이 길을 열어준 날, 우리는 새벽부터 출발 준비를 서둘렀다. 공항에서 핀란드 출신의 헬기 조종사 피터(여긴 피터가 참 많다)와 에어드롭에 대해 논의했다. 가능한 한 에어드롭 2회만으로 끝내는 것이 우리 계획이었지만 썰매의 부피 때문에 3회에 걸쳐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오전 8시 35분, 헬기가 떴다. 헬기 주제에 구태여 활주로 방향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방향을 잡는 것이 인상적이다. 그런데 약 20분 뒤 헬기가 갑자기 선회하기 시작했다. 어? 느낌이 좋지 않다.
“왜 방향을 틉니까?” “돌아가야 합니다. 기상 악화로 착륙 지점을 찾을 수가 없어요.”철렁, 또 심장이 내려앉았다. 두다다다…… 프로펠러 소리만 요란하게 울렸다. 헬기 아래로 설경이 펼쳐졌다. 무지막지한 빙하와 크레바스, 급경사의 얼음덩어리들이 구름과 눈보라와 안개에 뿌옇게 가려져 있었다. 한 마디로 ‘접근불가’였다.
공항으로 되돌아온 뒤 조종사 피터와 논의를 시작했다. 대원들과 기자, 그리고 열여섯 마리의 썰매개들은 출발하기도 전에 이미 기다림에 지쳐있었다.
“12시쯤이면 기상 상황이 좋아질 수도 있습니다. 가능성은 50%인데 어떡하시겠습니까?”피터가 물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여기서는 헬기가 회항할 경우 회항 비용까지 지불해야 한다. 이미 너무 많은 지출이 있었지만 나는 한 번 더 시도해보기로 했다. 일단 해보지 않으면 성공도 실패도 없을 테니까.
12시, 1차 선발조가 다시 헬기에 올랐다. 남쪽 방향으로 날아갈수록 구름은 점차 걷히고 있었다. 이륙 40여 분 뒤 피터가 “착륙하겠다!”고 했다. 착륙이라, 이 얼마나 반가운 말인가! 잠시 뒤 우리는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사막 위에 두 발로 섰다. 눈 덮인 평원 사이로 조금씩 만년 빙하의 청빙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눈밭에 엎드려 청빙에 입을 맞추었다. 차가운 얼음일 뿐이지만 수만 년의 농축된 자연이 내 몸 안으로 빨려 드는 것 같다.
선발 대원들을 내려두고 다시 헬기에 올랐다. 2차 에어드롭은 썰매개들을 이송하는 가장 어려운 과정이었다. 길길이 날뛰는 녀석들을 달래가며 겨우 헬기에 태웠더니 그 좁은 공간에서 열여섯 마리가 쉴 새 없이 싸워댔다. 가까스로 진정시킨 뒤 헬기를 떠나보낸 뒤 혼자 공항에 남았다. 이제 썰매를 운송하는 3차 에어드롭만 남았다. 썰매는 부피가 너무 커서 헬기 양쪽 문을 열어놓은 채로 날아야 했다. 시속 200km로 북극 상공 1,500m를 날아가는 동안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찢어놓는 것 같았다. 카메라를 쥔 오른 손은 감각이 거의 없어졌다. 그래도 찍었다. 저 아래 내려다보이는 빙하를 배경으로 내 발을 찍고, 준비해 간 콜라병도 찍었다. 미친 듯이 찍었는데 정말 미친 짓이었다. 도착할 때쯤엔 몸이 거의 다 얼어 있었다.
▲ 헬기에서 찍은 사진. 가까워 보이지만 발아래 빙하까지는 1000미터가 넘는다.

▲ 헬기에서 찍은 사진. 가까워 보이지만 발아래 빙하까지는 1000미터가 넘는다.

 
북위 68도 52분 23초, 서경 49도 21분 33초.

14일 간의 적응 훈련, 4일의 막막한 기다림, 기상 악화로 인한 출발지 변경, 그리고 3차에 걸친 에어드롭 끝에 드디어 출발지에 도착한 것이다. 기념촬영을 마치고 원정 성공을 기원한 뒤 드디어 탐험대가 출발했다. 나는 헬기에 올라 오래도록 손을 흔들었다. 대원들의 모습은 하얀 도화지 위에 찍힌 잉크자국이 되어 점점 멀어져갔다. 앞으로 60일 정도 예상되는 기나긴 여정, 우리 대원들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건강하게 무사하게 다 돌아오기만 바랄뿐이다. 오늘, 그린란드의 하늘이 우리의 출발을 허락했듯이 탐험의 성공도 하늘이 결정할 것이다. 우리는 그저 계획한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
텅 빈 숙소로 돌아오자 피로가 몰려왔다. 대원들은 모두 떠났지만 해야 할 일들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베이스캠프 매니저는 걷지 않는 탐험대원이다. 행군하는 대원들과 똑같은 호흡으로 매순간 상황을 체크하고 그때그때 전략을 짜야한다. 이 희귀한 역할을 맡은 뒤부터 나는 매일매일 마치 영화감독처럼 한 편의 드라마를 쓰고 지우는 버릇이 생겼다. 기다란 그린란드 지도 위에 탐험대가 지나게 될 루트를 그려보며 언제, 어디쯤에서 에어드롭을 해야 할지, 썰매개의 체력으로 하루에 얼마나 달릴 수 있으며 어느 지역에 크레바스가 도사리고 있을지, 발생 가능한 모든 일들을 미리 예측하고 그때마다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궁리해보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잠시 쉬고 싶다. 남아있는 오늘의 몇 시간들은 나만의 그린란드 여정을 정리하면서 보낼 것이다.
2011년 5월 3일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지 어느덧 26일이 지나고 있었다.

▲ 이제 그린란드의 대 설원 위에는 이들의 발자국이 찍힐 것이다.
▲ 이제 그린란드의 대 설원 위에는 이들의 발자국이 찍힐 것이다.
 

박 대 영 (공연예술기획자, 문화탐험가)
nanoqpark@naver.com

2011년 그린란드 탐험대의 베이스캠프 매니저로 누크, 일루리사트, 까낙 등지를 직접 오가며 현지인들의 삶과 문화를 취재하고 북극권의 자연을 영상에 담았다. 지난 7년간 공연기획자로서 세계 50여 나라와 도시에서 동시대의 문화를 탐험한 바 있고, 현재 영화 제작자의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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