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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코벤트리 대성당의 폐허 속에 세워진 나무 십자가는 지금도 전쟁의 상처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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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폭격으로 파괴된 코벤트리 대성당
유럽인들에 생생한 감동과 교훈 전하는 상징
비운의 도시 코벤트리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겨울부터 이듬해까지 히틀러는 독일과 전면전을 선포한 영국에 대대적인 공습을 감행한다. 독일을 떠난 일단의 전투기들이 수도인 런던보다도 우선적으로 목표로 한 도시가 있었다. 런던에서 북서쪽으로 약 150km 가량 떨어진 코벤트리다.
코벤트리는 영국의 산업발전과 함께 성장한 전형적인 제조업 도시로서 독일이 이곳을 목표로 한 것은 코벤트리에는 각종 기계, 엔진 등 무기와 군수 장비의 핵심 부품들을 생산하는 공장들이 밀집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영국의 무기 생산 통로를 원천봉쇄하기 위한 조치였다. 1940년 11월 14일 밤에 있었던 코벤트리에 대한 독일군의 폭격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한 도시에 가해진 가장 집중적인 공격으로 기록될 정도로 참혹했다. 전쟁이 끝난 후 코벤트리는 전 국민적인 관심과 동정을 받기에 충분했고, 코벤트리시는 코벤트리 대성당의 재건을 통하여 제2차 세계대전을 증언하는 성지로 거듭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의 성지를 상징
유럽 대부분의 도시들처럼 코벤트리도 대성당(본래 이름은 성 미카엘 대성당)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다. 이 성당은 14, 15세기에 걸쳐서 완공된 것으로 영국 중서부에서 가장 큰 성당 중의 하나였다. 안타깝게도 대성당은 독일군의 폭격으로 타워, 첨탑, 외벽만이 남아서 성당의 흔적만을 가까스로 증거하고 있을 뿐이었다.
독일군의 폭격이 끝난 다음 날 아침, 성당을 둘러보던 신부님은 성당의 상징인 십자가가 폭격에 사라진 것을 알아차렸다. 안타까운 마음에 주위를 살피다가 불에 타서 어지럽게 나뒹구는 건물 잔해더미에서 두 개의 검게 그을린 나무 조각을(아마도 천장의 일부였을 것이다) 집어 들었다. 급한 마음에 엉성하게 십자로 엮어서 제단 위에 올려 놓았다. 참담하지만 당장 새로운 십자가를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신부님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리라.
놀랍게도 신부님이 임시로 만든 초라하기 짝이 없는 십자가는 이후 그대로 제단 위에 보존되었다. 아마도 당시의 신부님은 나무 조각 십자가가 전 유럽인들에게 생생한 감동과 교훈을 전하는 상징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짐작이나 했을까. 모두 깨져서 유리창 하나 남지 않은 벽을 뒤로하고 있기에 세찬 바람이라도 불면 금새 쓰러질 것처럼 제단 위에 놓여진 나무 조각 십자가. 그 초라함과 성스러움이 보는 이로 하여금 엄청난 감동을 자아낸다.
1950년에 코벤트리시와 코벤트리 성당의 책임자인 딕 하워드는 전쟁 복구사업의 핵심으로 폐허가 된 대성당을 재건축하기로 계획했고 이를 위한 공모전을 실시했다. 600여명이 참여한 공모전에서 건축가 바실 스펜스는 누구도 쉽게 상상할 수 없는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그것은 폐허로 변한 대성당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옆에 새로운 성당을 건립하여 하나로 통합하자는 것이었다. 폭격으로 인하여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남았지만 지난 수백 년간 코벤트리의 상징이었던 대성당의 형상을 유지하면서, 전쟁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성지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오랜 논의 끝에 스펜스의 제안은 받아들여졌고 기존 대성당 옆에 새로운 성당을 디자인하여 두 성당을 나란하게 연결시켰다.
스펜스의 디자인으로 말미암아 나무 조각 십자가도 고스란히 남겨졌다. 이곳을 찾은 시민과 관광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초라하기 짝이 없는 나무 조각 십자가 앞에 오랫동안 발길을 멈춘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글쓴이 김 정 후
(건축가, 도시사회학 박사)
director@jhkurbanlab.co.uk
저서 :
<작가정신이 빛나는 건축을 만나다>(2005)
<유럽건축 뒤집어보기>(2007)
<유럽의 발견>(2010)
<산업유산의 재탄생>(2012 발간 예정)
활동 :
런던대학 UCL 지리학과에서 도시 연구
김정후 도시건축정책연구소 운영
도시 및 건축법 수립과 정책 연구 참여
한겨레신문 문화칼럼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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