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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캄 도서관>은 건물의 1/3 가량을 마치 조각품처럼 도려내고 마치 어린이 장난감 블록 같은 밝은 모자이크로 입면을 만드는 등 파격적 디자인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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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건축가 윌 알솝은 독특한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파격적 형태와 독특한 원색의 사용 때문에 비난을 받는 반면,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측면에서 많은 추종자가 있다. 알솝이 단순히 시각적 흥미로움만을 추구하는 건축가가 아니라는 점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페캄 도서관>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지난 2000년에 문을 연 <페캄 도서관>은 이 지역은 물론이고 런던에서 상상할 수 없는 파격적 디자인을 통하여 그 자체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건물의 1/3 가량을 마치 조각품처럼 도려내고 육중한 상부는 일곱 개의 불규칙한 기둥으로 지지된다. 도서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건물 뒷면은 노란색과 빨간색을 중심으로 색색의 모자이크로 처리되었다. 마치 어린이 장난감 블록 같은 밝은 모자이크 입면은 주변의 가라앉은 이미지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템스 강 남쪽의 페캄 지역은 낯선 방문자들이 주변을 거니는 것 조차 유쾌하지 않을 정도로 삭막할 뿐만 아니라 런던이라고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역 커뮤니티나 기반시설도 열악하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 오랜 논의 끝에 결정된 시설이 도서관이다.
따라서 <페캄 도서관>은 단순히 공부하고 책을 열람하는 장소에서 한발 더 나아가서 탁아시설, 교육시설, 휴게 및 모임 공간 등을 설치하여 지역 사회의 다목적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되었다. 알솝과 담당자들이 주민들과 디자인에 관하여 끊임없이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했음은 언론을 통하여 여러 차례 회자된 바 있다.
<페캄 도서관>이 생김으로써 지역 주민들 간에 자발적인 취미 생활과 공동체 생활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난다는 점은 공공건물이 지역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를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페캄 도서관>의 하루 평균 이용자 수는 4만 명에 달한다. 아울러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는 건물 답사자들을 위하여 정기적으로 견학 및 안내 프로그램까지 운영하고 있다. 낙후된 지역의 작은 도서관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조각품으로 탄생한 알솝의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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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 시계가 지닌 대칭과 균형에서 살짝 탈피한 디자인으로 단순하지만 독창적인 알솝의 손목시계는 ‘시계 조각’으로 불릴 만큼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커피스푼(오른쪽) |
윌 알솝은 많은 제품을 디자인하지 않았지만 주방기구 회사인 알레시와 협력하여 몇 가지 독특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알레시는 21세기에 들어서 일본의 대표적 시계 제조사인 세이코와 협력하여 손목시계를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그 대표작은 바로 윌 알솝의 작품으로 그의 디자인 개념과 상상력이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알솝이 건물 디자인에서 자주 사용하는 네 가지 색으로 출시된 <알솝 손목시계>는 한 눈에 초창기 디지털 손목시계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기존 시계가 지닌 대칭과 균형에서 살짝 탈피한 디자인이다. 입체감을 주어서 마치 영화관의 스크린을 연상시키는 시계 화면은 조금씩 일그러진 사각형 틀 속에 자리하고, 이와 연결된 플라스틱 몸체에는 대각선의 장식이 연속된다. 이와 같은 알솝의 단순하지만 독창적인 손목 시계는 ‘시계 조각’으로 불릴 만큼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다음으로 알솝이 알레시를 통해서 선보인 <커피 스푼> 또한 그만의 독특한 디자인 감성을 드러낸다. 스테인레스 스틸로 만든 알솝의 앙증맞은 <커피 스푼>은 마치 살아서 꿈틀거리는 유기체처럼 보인다. 미래 영화 속의 주방에서 등장할 것 같은 모습이라고 할까. 매우 정교하게 디자인한 곡선은 스테인레스 스틸의 특징을 최대한 살려서 놓인 위치에 따라 반사된 빛과 그림자로 인하여 다양한 이미지를 드러낸다. 그런가 하면, 스푼 자체의 우아한 곡선은 수공예적 감성을 한껏 발산한다.
알솝은 손목시계와 마찬가지로 작은 변화를 통하여 전혀 다른 느낌의 스푼을 탄생시켰다. 알레시가 알솝의 커피 스푼을 단순한 기능을 넘어서 주방을 아름답게 만드는 장식품으로서의 가치를 홍보하는 이유이기도 한다.
흥미롭게 알솝은 손목시계, 커피 스푼과 같은 상대적으로 작은 제품만을 디자인한다. 그가 디자인한 제품은 그의 건축만큼 파격적이지 않다. 그렇지만 작은 변화를 통해서 건물 못지 않은 독창성을 드러낸다.
글쓴이
김 정 후 (건축가, 도시사회학자)
archtocity@chol.com저서 : <작가 정신이 빛나는 건축을 만나다>(2005)
<유럽건축 뒤집어보기>(2007)
<유럽의 발견>(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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