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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칼럼니스트김정후 건축가 글짜크기  | 
건축, 디자인과 통하다 21 건축과 철학의 경계를 오가는 피터 아이젠만
코리안위클리  2011/07/06, 05:21:27   
▲ 홀로코스트 추모비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60해를 맞아 베를린에 세워진 거대한 비석이다. 2,711개에 달하는 이 추모비는 사이로 걸어 들어가면 공허한 공간과 육중한 석비의 틈바구니에서 생사의 갈림길을 오가던 유대인들의 한없는 절박감이 밀려온다.
현대 건축가 중에서 세계적으로 광범위한 영향력을 미친 건축가를 꼽는다면 아마도 미국의 파터 아이젠만(Peter Eisenman)일 듯싶다. 아이젠만은 단순히 건물 디자인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저술 및 강연 활동을 통해 그만의 독특한 해체주의 건축 세계를 구축했다. 그는 미국에서 건축을 공부한 뒤에 캠브리지대학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은 바 있다. 20세기에 디자인한 주옥 같은 작품들을 뒤로 하고, 아이젠만의 디자인 철학을 분명히 드러내는 작품은 지난 2005년에 베를린에 완공한 <홀로코스트 추모비(Holocaust Memorial)>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60해를 맞이하여 베를린에 디자인한 <홀로코스트 추모비>는 평균 무게가 8톤에 달하는 2,711개의 석비로써 그야말로 거대한 무덤이나 다름없다. 비석의 높이는 0.2 미터에서 4.8 미터까지, 길이는 2.38 미터, 폭은 0.95 미터로 매우 다양하다. 그리고 추모비로 빼곡하게 채워진 광장의 남동쪽으로 가면 계단을 통하여 지하로 내려갈 수 있는데, 이 곳에 유대인 추모 및 정보 센터를 마련하여 당시의 사진과 영상을 포함하여 희생자들의 일기, 편지 등을 전시한다.
첫 눈에 2,711개의 추모비는 공동묘지의 묘비 혹은 관이 솟아오른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히틀러의 총칼에 죽음을 맞은 이름 모를 수많은 유대인을 형상화한 것이라 할까.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추모비 사이로 걸어 들어가면 사방으로 통하는 좁은 석비 사이로 금새 무언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 석비의 높이가 2미터가 넘는 위치에서부터는 미로와 같아서 방향을 잃기 십상이다. 시작도 끝도 없는 공허한 공간, 아무 것도 없는 육중한 석비의 틈바구니에서 한없는 공포감이 밀려온다. 공포 영화나 소설이 주는 소름 끼치는 느낌을 넘어선다. 절대 고독과 침묵의 시간, 아이젠만은 방문객이 짧은 순간이나마 생사의 갈림길을 오갔던 유대인의 절박함을 헤아리기를 바랐으리라!

제품에 입힌 아이젠만의 디자인 철학

▲ 건물 형태의 반지와 평면과 입면의 구성을 잘 보여주는 의자
▲ 건물 형태의 반지와 평면과 입면의 구성을 잘 보여주는 의자
 
아이젠만은 실무 디자인을 시작한 이래로 지속적으로 제품 디자인에 관심을 가졌다. 제품 디자인에 관심을 가진 다를 건축가들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매우 직설적일 정도로 철저하게 자신의 건축 개념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아이젠만이 디자인한 반지는 이러한 그만의 독특한 디자인 철학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아이젠만의 반지는 한 눈에 건물과 같은 형태를 지님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가 이 반지를 디자인하기 위해서 한 스케치를 살펴보면 놀라울 정도로 건물을 디자인하는 것과 동일한 과정을 거쳤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곧 그가 지닌 건축 철학을 반지에 가감없이 접목했음을 상징한다. 이 반지가 특히 흥미로운 이유는 평면적 형태를 넘어 입체적 구성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따라서 마치 하나의 건물처럼 다양한 모습의 입면을 갖는 반지가 탄생했다.
아이젠만이 이 반지를 선보인 후에 “보석을 세운다”는 표현까지 등장한 바 있다. 그 만큼 아이젠만은 반지 디자인을 통해서 건축과 디자인의 경계를 허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 그가 디자인한 의자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보편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의자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지닌 아이젠만 의자는 반지와 동일한 접근방식을 지닌다. 아무런 장식이 없는 의자는 마치 육중한 건물 같은 모습이다. 그런데 이 의자의 백미는 바로 의자 옆면의 장식이다. 건축 전문가가 아니면 본 장식을 단박에 알아차리기 어려운데, 이는 아이젠만이 즐겨 사용하는 평면과 입면의 구성이다. 수직, 수평의 선을 이용하여 다양한 공간 구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물론 조금 더 복잡할 뿐, 앞서 설명한 반지에서도 비슷한 원리를 실험했다고 할 수 있다.
아이젠만은 자신이 디자인한 건물을 옷으로 만들어서 입고 등장할 정도로 개성과 유머가 넘치는 건축가다. 자신만의 건축 철학을 건물 디자인을 넘어 다양한 방식을 통해서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글쓴이 김 정 후
          (건축가, 도시사회학자)
          archtocity@chol.com

저서 : <작가 정신이 빛나는 건축을 만나다>(2005)
         <유럽건축 뒤집어보기>(2007)
         <유럽의 발견>(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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