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레인지 사신 날
요 며칠, ‘전자레인지에서 나오는 광선이 몸에 해롭다’고 사지 못하게 하시는 시어머니 때문에 살림재미가 없다고 부쩍 투덜대시던 시아버지, 양파 사러 가신다더니 양파 대신 커다란 전자레인지 박스를 들고 오셨다.
첫째 날, 팔십 평생 처음으로 전자레인지를 사서 극도로 흥분하신 시아버지, 내게 또 슬슬 시비를 거신다.
“너, 전자레인지 써봤냐?”
“20년 전부터 쓰기 시작했는데요”
“너, 이거 알고 보면 되게 편리하다!”
“20년 전부터 쓰기 시작했다니까요!”
토스터 달린 전자레인지까지 만드는 ‘LG의 나라, 한국’에서 온 내게, 타이머와 온도계밖에 없는 5만 원짜리 중국제 전자레인지를 들이대시며 무슨 최신기술로 만든 에어컨 겸용 전자레인지라도 되는 양 제품설명을 시작하신다.
“그릇 사용에 조심해야 돼요. 특히 쿠킹호일 같은 것 집어넣으면 불나요, 불! 또 전력이 세니까 토스터나 오븐이랑 같이 사용하면 절대 안 되고, 에 또…”
어차피 당신 혼자 사용하실 거면서 웬 사용법 설명이람!
둘째 날, 커피를 전자레인지에 데워주고 나서도 “뭐 데울 거 없냐?”고 하도 성화를 하셔서, 할 수 없이 데운 우유에 씨리얼 말아 먹었다. 점심 때는 전자레인지 앞에 의자 놓고 앉아서 음식 다 데워질 때까지 지켜보시고, 뚜껑이 들썩거리면 즉시 중단시키고 중간점검하시고….
‘도대체 내가 아프리카 오지로 시집을 온 거야, 선진국 캐나다로 시집을 온 거야…’
셋째 날,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더 많은 레몬즙을 내신다며 레몬을 전자레인지에 넣으셨는데, ‘푸샥!’하는 소리와 함께 레몬이 일부 폭발한 것이다. “중국제는 요리 빼곤 뭐든 후지다!”고 전자레인지 탓을 하시며 ‘지뢰 제거반’처럼 레몬 폭탄을 제거하시는 모습에 우리 식구 모두 숨이 넘어갔지만, 누구 하나 소리 내서 웃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의 예상대로 3일 후부터는 사용 횟수를 줄이시더니 지금은 거의 사용을 안 하신다.
지난번에도 마요네즈 만든다며 사오신 작은 거품기로 한 3일간 ‘모든 액체 거품화시키기’에 몰두하시다 사장시키셨고, 김장할 때 쓰는 일제 채칼을 사오셨을 때는 며칠간 다양한 모양으로 채쳐서 만든 야채 요리만 먹어야 했다.
우리가 무슨 ‘731부대 마루타’도 아니고, 이젠 물건 새로 사실 때마다 겁부터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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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티브 북 출판 / 전희원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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