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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만든 전설의 이머시브 공연 ‘슬립 노모어’의 한계
코리안위클리  2025/12/12, 22:40:31   
ⓒ Robin Roemer
관객의 ‘완전한 자유’라는 환상, 서사의 파편화를 미학으로 포장

영국에서 서울에 상륙한 <슬립 노모어>는 늘 그렇듯 화려한 수식어를 동반한다. 관객이 극장을 자유롭게 탐험하고 셰익스피어가 현대적으로 재탄생하며 기존 연극 문법이 완전히 뒤집힌다는 기대가 이번에도 강하게 작동한다. 그러나 공연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오래전부터 제기된 과대평가와 구조적 결함이 여전히 그 안에 박혀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한다. 찬사와 신화의 이면에는, 이 포맷이 애초에 안고 있는 균열들이 자리하고 있다.
관객의 ‘완전한 자유’라는 환상은 그 대표적 사례다. 슬립 노모어는 누구나 마음대로 움직이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든다는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실제 구조는 반복되는 루프와 설계된 동선의 조합이다. 관객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 특정 인물의 뒤를 따를 것인지, 어느 방으로 이동할 것인지와 같은 제한된 분기점 뿐이다. 이야기는 관객의 개입에 따라 달라지지 않으며, 공연은 오히려 관객을 거대한 기계장치 속에 배치한다. 특히 연극 맥베스를 잘 모르는 관객에게는 강렬한 이미지의 파편만이 남고, 비극의 구조나 인물의 동기는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분해된다.
셰익스피어 해석이라는 명제도 실제 공연과는 간극이 존재한다.
이 작품은 정치성, 죄책감, 권력의 파괴라는 맥베스의 본질을 심층적으로 다루기보다, 시각적 미장센과 누아르적 분위기, 현대무용의 신체성을 중심에 둔다. 따라서 공연은 셰익스피어의 재해석이라기보다 셰익스피어를 배경으로 삼은 감각적 체험에 더 가깝다. 많은 비평가가 작품의 깊이를 이야기할 때조차 그 근거는 텍스트가 아니라 이미지와 감각에서 출발한다.
흔히 이머시브 시어터의 담론에서 반복되는 ‘민주적 극장 혁명 (전통 극장의 ‘전체주의적’ 스토리텔링에 대비해 “관객이 자기 경험을 만드는 democratic 형태)’라는 서사 역시 현실과 어긋난다. 무대와 객석의 장벽을 없애고 관객의 신체 자유를 보장한다는 명분은 진보적으로 들리지만, 뉴욕과 상하이에서 이 공연은 오히려 고가 정책과 프리미엄 체험 모델로 운용되어 왔다.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VIP 패키지, 별도의 바 서비스, 드레스 코드 등으로 확장된 이 포맷은 혁신보다는 고급 체험 상품의 형태에 훨씬 가깝다. 이 공연이 내세우는 개혁적 이미지 뒤에는 실제로 매우 선명한 소비 계층 구도가 존재한다. 따라서 관객 참여형 공연이 전통적인 극장 공연보다 더 민주적이라고 보는 관념을 경계해야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안전과 동의(Consent)의 영역이다. 익명 마스크를 쓴 관객, 어둡고 좁은 공간, 배우와의 근거리 접촉이 결합되면서 뉴욕 프로덕션에서는 신체 접촉과 성적 괴롭힘 문제가 반복적으로 제기되었다. 이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이 포맷 자체가 만들어내는 구조적 위험에 가깝다. 배우는 종종 취약한 상태로 장면을 수행해야 하고 관객은 익명성 속에서 억제 장치 없이 움직인다. 서울 공연에서는 이 지점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도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될 것이다.
서사의 파편화 역시 공연의 숙명적 약점이다. 여러 루프가 동시에 돌고, 관객은 그 일부만 따라갈 수 있다. 이로 인해 전체 이야기는 거의 파악되지 않고, 인물의 내적 동기나 사건의 인과는 시각적 경험 아래에 묻히기 쉽다. 아무리 장면이 아름답고 강렬해도 비극의 구조를 온전히 경험하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다. 이것은 단순한 연출 부족이 아니라, 자유 이동형 이머시브라는 장르가 갖는 태생적 구조다. 그래서 다시 와서 다른 루프를 경험하라는 논리는 서사적 결함을 미학으로 포장하는 방식에 가깝다.
이 공연이 오늘날 경험 경제의 흐름과 정확히 맞물리면서 발생하는 문제도 무시하기 어렵다. 관객이 ‘나만의 경험’을 소비하는 방식은 프리미엄 티켓, 브랜드 협업, 고가의 홍보 마케팅 모델과 결합되며 공연을 점점 럭셔리 체험 상품으로 밀어낸다.
상하이에서 이미 고가 티켓에 추가 콘텐츠를 제공하는 체제로 전환된 것처럼, 이 포맷은 예술보다 ‘경험 상품화’에 의해 끌려갈 위험이 크다. 서울에서도 이 흐름이 반복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노동과 재정 구조의 취약성이 이 포맷의 지속 가능성을 흔든다. 배우는 높은 강도의 신체 노동을 매일 반복해야 하고, 공간 운영에는 상당한 인력과 비용이 요구된다. 뉴욕 슬립 노모어가 결국 노모어(No More)되고 450만 달러 이상의 대관료 미납 분쟁/소송에서 진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이 공연이 구조적으로 얼마나 불안정한 경제적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예산 압박이 커질수록 안전과 케어 시스템은 후순위로 밀리고 프리미엄 가격 정책과 부가 판매에 의존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더욱 강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립 노모어는 여전히 매혹적인 작품이다. 공간의 감각, 이미지의 힘, 배우의 신체성은 언제나 강렬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이 작품이 전설적 지위를 유지해 온 만큼, 그 신화가 만든 그림자도 함께 직시해야 한다.
이번 서울 공연은 단순한 흥행작을 넘어 이머시브 공연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확인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관객이 이 작품을 ‘혁신의 신화’로 볼 것인지, 혹은 그 뒤에 숨은 구조적 균열까지 포착할 것인지는 이제 서울의 현장에서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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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공연기술은 정말 ‘뺏길 위험’에 처해 있는가

한국과 싱가포르를 둘러싼 불안 드러내는 영국 정책의 공백

12월 2일, 영국의 프로듀서 매튜 바이엄 쇼(Matthew Byam Shaw)는 국립극장 토론 자리에서 “한국과 싱가포르가 영국 공연기술을 ‘grab’할지 모른다”고 말하며 두 국가가 더 많은 자본을 바탕으로 공연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더 스테이지》는 이 발언을 제목으로 내세워 영국 기술이 아시아에 ‘탈취’될 수 있다는 인상을 강조했다. 그러나 기사에는 한국·싱가포르가 영국 기술을 실제로 가져간 사례나 근거가 제시되지 않는다. 독자들 역시 “동아시아 도둑 서사”라는 비판을 댓글에서 제기했다. 공연기술은 본래 협업과 상호학습을 통해 발전하는 영역이며, 특정 국가가 일방적으로 기술을 빼앗는다는 서사는 현실과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두 국가가 언급된 이유는 분명하다. 한국과 싱가포르는 예술·기술 융합(Arts x Tech)에 국가적 전략을 두고 장기적으로 투자해 왔다. 공연예술을 단순 문화 소비가 아니라 기술·콘텐츠 산업을 잇는 성장 동력으로 보는 시각이다. 반면 영국은 신작 개발이 2019년보다 30% 감소하고, R&D를 위한 구조적 예산이 부족해 기술·창작 실험의 생태계가 취약한 상황이다.
바이엄 쇼의 발언이 실제로 가리키는 것은 한국·싱가포르의 ‘위협’이 아니라, 영국 내부의 정책 공백이다. 재능은 풍부하지만 장기 투자가 부족해 미래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내부적 경고에 가깝다.
오늘날 공연기술은 국제 협업, 공동개발, IP 교류 속에서 성장한다. 한국 제작사들은 이미 영국 창작자와 협업하며 작품을 만들고, 싱가포르의 Arts x Tech Lab 역시 영국 예술가에게 실험 플랫폼을 제공한다. 이런 흐름은 경쟁이 아닌 상호 강화에 가깝다. 따라서 ‘grab our tech’라는 표현은 시대착오적이다. 기술은 지키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키우고 확장할 때 가치가 커지는 자산이다.
결국 우리가 읽어야 할 메시지는 단순하다. 한국과 싱가포르는 영국 기술을 빼앗으려는 나라가 아니라, 예술·기술에 장기적 투자를 아끼지 않는 국가들이다. 문제는 영국의 미래 투자 부족이며, 이것이야말로 바이엄 쇼의 발언이 드러내는 본질적 위험이다. 기술 경쟁을 위협으로 두려워하기보다 국제적 협업 모델을 강화하는 것이 영국과 아시아 모두에게 더 현실적이고 생산적인 길이다.

ILOVESTAGE 김준영 프로듀서
junyoung.kim@ilovestag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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