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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aworth Tompkins/Heatherwick Studi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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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도 보고 마일리지도 사용하고
영국의 대표 항공사인 브리티시 에어웨이즈(British Airways, 이하 BA)가 2027년 개관 예정인 신생 공연장 ‘Olympia Theatre’의 네이밍 파트너로 공식 선정되었다.
이로써 해머스미스와 켄싱턴 사이에 지어지는 새 극장은 ‘British Airways Theatre, Olympia’라는 이름을 갖게 되며, 이는 런던에서 거의 50년 만에 건설되는 가장 큰 규모의 신규 상설 공연장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상징성을 갖는다.
이번 파트너십은 트라팔가 엔터테인먼트(Trafalgar Entertainment) 와 브로드웨이 최대 극장주인 슈버트(Shubert Organization)가 공동 운영하는 올림피아 복합단지의 핵심 프로젝트로, 공연장뿐 아니라 현장 내 라이브 음악 공연장 역시 ‘British Airways ARC’로 명명된다.
BA는 항공 산업의 글로벌 브랜드 파워를 런던의 문화 예술 현장과 결합함으로써, 영국 예술계와 기업 스폰서십이 만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BA의 스폰서십은 단순한 ‘이름 사용권’ 이상의 구조를 갖는다. 핵심은 브랜드 경험(brand experience)의 극장 내 통합이다.
기존 BA 고객은 향후 특정 공연에서 전용 VIP 라운지인 ‘British Airways Wing’을 이용할 수 있으며, 이 공간에는 별도의 칵테일 바와 일부 작품에서는 무대가 보이는 프라이빗 발코니도 제공될 예정이다.
이는 항공사가 누적해온 프리미엄 서비스 이미지를 공연 경험과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항공사와 공연장의 이해관계를 모두 충족시키는 전략으로 보인다.
BA의 참여는 단순한 후원 이상의 파장을 예고한다. 최근 Shakespeare North Playhouse가 약 10년간 최대 300만 파운드 규모의 네이밍 스폰서 계약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영국 극장계 전반이 ‘기업 후원 기반’으로 전환하는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상업 브랜드와 극장명을 직접 결합하는 방식은 영국에서 드문 편이었지만, 이번 사례들은 예술 기관들이 새로운 재원 구조를 적극 모색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고객은 기존 항공 마일리지를 공연장에서 소진할 수 있고 항공사는 점점 쌓여가는 마일리지 부채를 자연스럽게 털어낼 수 있는 실용적인 모델이다.
이번 사례는 공연장이 단순히 예술 작품을 올리는 공간을 넘어 브랜드와 고객 경험이 결합하는 복합 문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항공사처럼 대규모 고객 기반을 가진 기업이 공연장 스폰서십을 통해 고객 충성도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공연장은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BA의 사례는 이러한 전략적 제휴가 단순 후원이 아닌 비즈니스 모델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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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 연극의 해외 진출’은 그만하자
“한국 연극의 해외 진출” 이라는 표현은 세미나, 정책 발표, 공모 요강에서 아무 생각 없이 몇 번이나 사용되는 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공연이라는 장르의 작동 방식을 정말 이해한다면, 이런 표현부터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K-팝, K-드라마, K-푸드, K-뷰티는 ‘K’라는 접두사가 어느 정도 기능을 한다. 국기와 국가 이미지를 앞세워도 상품이 움직인다. 하지만 공연은 다르다. 공연 작품은 국가가 아니라 이름으로 움직이는 장르다. 관객이 기억하는 것은 “한국 연극”이 아니라 “누구의 작품”이다. 런던 관객에게 “벨기에 연극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면 고개를 갸웃한다. 하지만 “이보 반 호브(Ivo van Hove) 작품 보셨어요?”라고 묻는 순간, 표정이 달라지면서 각자의 트라우마와 사랑이 쏟아져 나온다. 이 간단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가 지난 수년간 외쳐 온 “한국 연극의 해외 진출”이라는 슬로건이 장르의 특성과 얼마나 엇갈려 있었는지가 선명해진다.
영어권, 특히 런던·뉴욕의 상업 시스템에서 가장 큰 이익은 ‘수입’이 아니라 ‘원작 개발’에 있다. 브로드웨이·웨스트엔드의 상업 프로듀서가 꿈꾸는 장면은, 통역을 대동한 한국 희곡 쇼케이스가 아니다. 자기가 발굴한 작가와 새 작품을 개발해 향후 10~20년 동안 투어·라이선스·아마추어 공연에서 꾸준히 로열티를 받는 장면이다.
영국 통계를 보면, 실제 제작 편수에서 번역극은 전체의 극히 일부에 그친다. 대부분의 작품이 처음부터 영어로 쓰인 오리지널이고, 박스오피스 상위권 역시 웨스트엔드 창작 연극과 뮤지컬, 영어권 작가의 신작들이 차지한다.
이 구조 안에서 한국에서 씌어진 작품은 영국 프로듀서에게 대략 이렇게 보인다. 제작·마케팅·극장 임대료 등 현지 리스크는 모두 영국 측이 떠안는다. 그런데 IP(저작권)의 중심은 한국에 있다. 설령 흥행에 성공하더라도 이후 투어, 해외 라이선스, 영상화 등 장기 수익의 상당 부분은 한국 원저작권자에게 돌아갈 수 있다. 같은 돈과 시간을 들일 때, 영국 작가와 영어 오리지널을 개발하는 편이 수익·지분·경력 측면에서 훨씬 유리하다. 그러니 영국 배우·연출·디자이너가 한국 작품의 독창성에 열광해도, 프로듀서와 투자자가 유난히 조용한 것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수학의 문제’에 가깝다.
우리가 “K-뮤지컬이 토니상을 6개 탔다”고 자랑해도, 그들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상패가 아니라 계산기다. 숫자가 맞지 않으면, 미소는 공손할 수 있어도 지갑은 끝내 열리지 않는다.
여기서 흔히 이런 반론이 나온다. “그 논리대로라면 한국·일본·중국 프로듀서도 영미권 작품 라이선스를 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어차피 IP는 자기 것이 아닌데?” 그러나 지난 수십 년을 돌아보면, 서울·도쿄·상하이의 대형 극장 레퍼토리는 오히려 서구 라이선스 연극과 뮤지컬이 시장과 관객 습관을 이끌어온 중심이었다. 이 모순처럼 보이는 상황은 사실 ‘중심’과 ‘주변’의 위치 차이로 설명된다.
런던과 뉴욕은 글로벌 공연 IP의 핵심 허브다. 이곳에서 새 작품이 태어나 전 세계로 번진다. 반면 한국·일본·중국은 그 작품을 사서 자국어 버전으로 공연하며 지역 시장을 확장하는 주변 허브에 가깝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프로듀서들이 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나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라이선스를 사온다는 것은 “검증된 글로벌 브랜드를 일정 기간 자국에서 임대하는 것”과 비슷하다. IP는 영국과 프랑스에 남지만, 수요 예측이 어느 정도 보장된 상태에서 자국 관객에게 판매할 수 있다.
반대로 영국 프로듀서가 한국의 연극을 들여온다고 상상해 보자. 이미 시장에는 영국 작가의 신작이 넘쳐나는 상황이고, 영국 관객에게 한국 작품은 처음 들어보는 제목이다. 브랜드 파워도, 미리 쌓여 있는 관객의 욕망도 없다. 그럼에도 제작·마케팅·극장 리스크는 영국이 떠안는다. 히트하더라도 IP의 상당 부분은 한국에 머문다. 동아시아에게 라이선스 작품이 “검증된 히트작을 일정 기간 빌려 오는 장사”라면, 영국에게 한국 작품 소개는 “앞으로 히트할 수도 있는 남의 IP를 대신 키워주는 장사”에 가깝다. 두 상황에서 계산기가 다르게 나오는 것은 구조적으로 당연하다. 우리가 이 구조를 건드리지 않는 한 “왜 영국 프로듀서는 한국 작품에 관심이 없냐”라고만 말하는 것은, 상대의 심성을 탓하면서 정작 그들의 엑셀 시트를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 볼 필요가 있다. “한국 연극의 해외 진출을 어떻게 늘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한국 창작자의 언어가, 어느 도시의 레퍼토리에 반복 등장하게 만들 것인가?”로. 프레임이 바뀌면 전략도 달라진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한국 대표작 ○편을 선정해 쇼케이스한다’는 트랙은 계속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옆에 전혀 다른 트랙을 하나 더 세워야 한다. 이를테면 이런 상상을 해볼 수 있다. ‘Korean Theatre Fellows’라는 이름의 창작자 브랜드 트랙이다.
연우무대, 국립극단, 공놀이 클럽 등 주요 민간 극단이나 인디 현장에서 가장 독자적인 언어를 가진 연출가와 드라마터그를 선정한다. 이들을 5~10년 단위로 런던·맨체스터·에든버러·베를린·아비뇽 같은 특정 극장·페스티벌과 묶어, 한 번 쇼케이스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작품을 함께 만드는 장기 협력 구조를 설계한다. 이때 작품은 반드시 “한국 배우+한국 이야기+한국 배경”을 100% 유지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작가나 연출 언어와 문제의식이 한국에서 왔다”는 사실과, 그 언어가 현지 배우·관객·도시를 만나며 어떻게 변주·충돌·확장되는지다. 그래야 10년 뒤 시즌 브로셔에 남는 문장은 공허한 “코리안 시즌(Korean Season)”이 아니라 “○○○’s new work”가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상상의 장면이다. “한국 연극이 세계에 나가야 한다”는 추상적 슬로건 대신, “10년 뒤 영국 관객이 ‘○○ 연출가 새 작품 보셨어요?’라고 물었을 때, 서로가 누구를 말하는지 바로 알아듣는 상황”을 그려보는 것이다. 그때쯤이면 ‘Korean theatre abroad’라는 말은 아무도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미 더 정확한 표현을 갖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 ○○? 한국에서 온 연출가(작가)인데, 요즘 여기서 제법 잘 나가.” 그 순간, 한국 연극은 비로소 해외에 ‘진출’한 것이 아니라 그냥 그 동네 사람이 된 것이고, 그 정도라면 지금까지 쏟아온 정책 지원의 값은 충분히 뽑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ILOVESTAGE 김준영 프로듀서
junyoung.kim@ilovestag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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