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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가 아들 사무엘을 제사장 엘리에게 맡기다, 게르브란트 반 에크하우트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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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오히려 고통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편안한 세상 속에서 살아갑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스마트폰이 이미 오늘의 세상을 준비해 놓습니다. 커피는 자동으로 내려지고 출근길에는 내비게이션이 길을 열어줍니다. 배달앱이 우리의 욕망을 집앞까지 도착시킵니다. 하루의 끝, 소파에 몸을 맡기면 스트리밍 서비스가 그날의 피로를 기억하고 달래줍니다.
이토록 부드럽고 매끄러운 삶. 여기서는 편안함이 최고의 미덕이 되고 불편함은 즉시 제거해야 할 고장처럼 여겨집니다. 감정은 이모티콘으로 간단히 표현되고 고통은 반드시 피해야 할 단어처럼 취급됩니다.
그러나 이 편안함의 달콤함 속에서 우리의 영혼은 서서히 건조해져 가고 있습니다. 진짜 삶은 언제나 약간의 상처, 조금의 아픔, 절실한 눈물 속에서 비로소 시작되는데도 말입니다.
삶에는 신경이 곤두서는 순간에만 열리는 기적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대를 사는 우리는 이 기적의 틈을 잃어버린 듯합니다.
고통이 없기에 우리는 자기 성찰의 능력도 타인을 향한 깊은 공감도 서서히 잃어갑니다.
인간은 고통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직면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 ‘나’를 발견합니다.
내가 지나온 고통의 골짜기만큼 타인의 눈물에 귀 기울일 수 있습니다. 고통을 피해 달아난 이들은 입술로는 “그 마음 안다” 말해도 그 말은 가슴에서 우러난 공감이 되지 못합니다. 고통을 견뎌낸 이만이 또 다른 고통의 떨림을 온전히 품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통이라는 선생님이 떠나간 자리, 그곳에서 우리의 기도는 어느새 형식이 되고 감사는 얕은 표면만 맴돌게 됩니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서서히 마음을 흐리게 하는 영적 위험이지요.
그러니 오늘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고통의 자리에 서 본 적이 있는가?”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울부짖어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안락한 일상속 기도 없는 세대의 한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가?
사무엘상 1장의 한나는 고통의 자리 서 있던 여인이었습니다. 그 시대에 아이를 잉태하지 못한다는 것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존재의 뿌리 자체가 흔들리는 절망이었습니다.
한나의 마음 속에는 부서진 희망의 조각들이 쌓여 있었고 고통은 그림자처럼 어디를 가든 그녀 뒤를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고통을 부정하려 애쓰지도 억지로 눌러 숨기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고통을 두 손에 고스란히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성전 한켠에 있는 한나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녀는 울었습니다. 조용한 눈물이 아닌 마치 세상의 모든 고통이 몸과 마음을 관통하는 것 같은 통곡, 원초적인 영혼의 언어, 하나님을 향한 마지막 붙잡음. 그 안에는 절망, 연약함, 좌절, 인간적 한계가 그대로 담겨 있었습니다.
한나는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얼마나 무력한지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부서진 마음, 깨진 꿈, 차가운 현실…. 그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은 순간, 그 입술에서 태어난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잉태했습니다. 그 응답의 이름이 사무엘이었습니다.
훗날에, 사무엘은 단지 한 아이의 탄생이 아니라 고통이 기도가 되고 그 기도가 감사로 변하여 하나님께 드려진 위대한 이야기가 됩니다.
우리는 고통받지 않기 위해 삶의 모서리를 둥글게 깎으며 살아갑니다. 아플 만한 상황을 미리 차단하고 눈물이 흐를 틈조차 허락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고통은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새벽의 안개처럼 바람의 그림자처럼 언젠가 우리 곁에 다가옵니다. 문을 닫고 굳게 잠그고 다시 걸어도 고통은 끝내 문틈을 비집고 들어와 우리 내면 가장 깊숙한 방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두드립니다. 삶의 어느 지점에서든 우리를 찾아오는 피할 수 없는 필연의 방문자입니다.
우리는 고통을 제거하려 들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고통 속에는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의미가 있고 아직 듣지 못한 메시지가 있고 아직 깨닫지 못한 하나님의 손길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고통은 우리를 쓰러뜨리는 폭풍이 아니라 무릎을 꿇게 하시는 바람입니다.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도록 부르시는 거룩한 초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통을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용기를 내야 합니다. 고통이 기도가 되는 순간, 그 기도는 반드시 새로운 차원의 감사로 피어나고, 그 감사는 우리의 삶 안에 하나님의 이야기를 새겨 넣습니다. 이것이 바로 한나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길입니다.
마지막으로 기억하십시오. 고통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기도는 절망의 마지막이 아니라 믿음의 첫 걸음입니다. 감사는 응답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을 만난 자의 고백입니다. 그리고 이 길 위에서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의 사무엘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조성영 목사
글로리아 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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