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시아 레바(Marcia Lebhar)의 신앙적 통찰을 중심으로
11월이 되면, 공기가 달라진다. 바람은 차가워지고, 나무들은 마지막 잎새를 떨구며 계절의 끝을 준비한다. 해는 점점 짧아지고, 사람들은 코트를 여미며 한 해의 마무리를 향해 걷기 시작한다. 그러나 자연이 속도를 늦추는 이때, 우리의 삶은 여전히 속도를 늦추지 못한 채 달려가고 있다. 영국과 유럽의 거리 곳곳에서는 벌써 크리스마스 장식이 걸리고, 상점들은 조기 세일을 시작한다. 사람들은 선물 목록과 일정표를 정리하며, 그 사이사이에서 “올해도 정신없이 흘러갔네”라는 말을 무심히 내뱉는다. 우리는 또 한 해를 정리하면서, 정말로 ‘살아냈는지’ 혹은 ‘그저 버텼는지’를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최근 서구 사회의 여러 보도들은 공통적으로 ‘속도의 피로(Speed Fatigue)’를 말한다. 너무 빠른 변화와 과도한 연결이 인간의 정신을 고갈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더 많이 알고, 더 자주 소통하지만, 정작 깊이 있는 만남과 여유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울리는 알림음과 끊임없는 이메일 속에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방해받지 않으려는 본능’에 길들여져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가장 깊은 순간들은 늘 예상치 못한 방해 속에서 찾아왔다. 계획에 없던 대화, 불쑥 건네진 위로, 뜻하지 않게 멈추게 된 걸음…. 그 ‘멈춤의 틈’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얼굴을 다시 보고,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이 조용히 개입하시는 흔적을 발견한다.
이제 한 해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올 한 해, 얼마나 많이 바빴는가? 그리고 그 바쁨 속에서 얼마나 자주, 하나님이 허락하신 ‘방해’를 외면했는가? 삶의 속도가 빠를수록 영혼의 속도는 느려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균형을 잃어버린 채, 멈추는 법을 잊고 산다. 혹시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멈추게 하시려는 건 아닐까?
“삶의 방해, 곧 신적인 개입이 특권임을 믿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다르게 다룰 뿐 아니라 오히려 기다리게 된다.” 프리실러 샤이어(Priscilla Shirer)의 이 말은 오늘의 삶을 깊이 돌아보게 한다. 헨리 나우웬(Henri Nouwen)은 “내 일은 늘 방해받는다고 불평했는데, 어느 날 깨달았다. 그 방해가 바로 내 일이었다”고 고백했다.
우리는 모두 바쁜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무언가에 쫓기며 산다. 일정은 빽빽하고 하루는 계획으로 가득하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는 강박과 더 많은 생산성을 추구하는 압박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방문이나 예기치 못한 변화가 그저 불편하고 귀찮게 느껴진다. 그러나 성경은 때때로 그 방해의 순간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방식일 수 있다고 말한다.
현대인은 시간을 통제의 대상으로 여긴다. 시간을 내 소유물로 여기며, 효율적인 삶이 곧 성공이라고 믿는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생각한다. “내 시간은 소중하니 아무나 들어올 수 없다.” 하지만 성경은 시간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계획한 틀 안에서만 일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우리의 질서 정연한 일상을 흔드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멈추고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신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그분의 사역 대부분은 ‘예정에 없던 순간’에서 일어났다. 지붕을 뚫고 내려온 중풍병자, 군중 속에서 손을 내민 혈루증 여인, 제자들이 막으려 했던 아이들,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 나무 위의 삭개오, 향유를 부은 여인. 모두 누군가의 눈에는 ‘방해자’로 보였지만, 예수님은 그 순간을 멈추어 서서 맞이하셨다. 그분에게 방해는 중단이 아니라 사명의 시작이었다. 예수님은 매 순간 아버지의 뜻이 그 자리에 있음을 신뢰하셨고, 하나님의 개입으로 받아들이셨다.
마르시아 레바(Marcia Lebhar)는 예수님의 이러한 태도 속에서 제자도의 본질을 보았다. 예수님은 계획보다 신뢰로, 통제보다 순종으로 살았다. 하나님은 우리의 계획을 무너뜨리실 때가 있다. 그것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통제의 자리’에서 ‘신뢰의 자리’로 옮기게 하시기 위함이다. 예상치 못한 사건은 하나님이 우리의 시선을 새롭게 조정하시는 순간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묻게 된다. “하나님, 이 일도 주님이 허락하신 일입니까?” 그리고 다시 고백한다. “그렇다면, 주님. 이 안에서 당신은 무엇을 하고 계신가요?” 바로 그 질문이 신앙의 출발점이 된다.
성경의 인물들은 대부분 방해를 통해 부르심을 받았다. 모세는 양을 치던 평범한 날,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었다. 사무엘은 한밤중, 잠을 깨우는 음성으로 깨어났다. 마리아는 결혼을 준비하던 평온한 시간에 천사의 방문을 받았다. 하나님은 사람의 계획표를 무너뜨리시지만, 그 무너짐 속에서 새로운 길을 여신다. 그분은 우리가 익숙함에 안주하지 않고 깨어나기를 바라신다. 그래서 때로 우리의 삶에 작은 균열을 내신다. 그 틈으로 들어오는 빛이 바로 하나님의 개입이다.
많은 이들이 신앙과 사역을 철저히 계획된 프로그램으로 이해하지만, 진짜 사역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자리에서 일어난다. 갑작스러운 요청, 불편한 대화, 우연한 만남 속에서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완벽한 준비보다 즉흥적 순종의 마음을 더 귀히 여기신다. 우리가 계획한 일을 완수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보내신 그 순간의 사람과 상황에 반응하는 것이 더 깊은 제자도의 길이다. 예수님이 그러하셨듯, 우리도 ‘지금 여기’에서 허락된 일에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멈추게 하심으로써 다시 보게 하신다. 바쁜 걸음 속에서 잠시 멈추어야만 우리는 주변의 사람과 자신의 내면, 그리고 하나님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 방해는 단순한 중단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은혜의 손을 얹으시는 방식이다. 그 손길은 우리의 계획을 어그러뜨릴지라도, 그 어그러짐 안에서 하나님은 더 큰 조화를 이루신다.
우리는 효율적인 삶을 꿈꾸지만, 하나님은 멈출 줄 아는 사람을 찾으신다. 멈춤은 포기가 아니라 신뢰의 표현이다. 오늘 하루에도 수많은 변수가 찾아올 것이다. 그때마다 초조해하기보다 이렇게 기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주님, 이 방해가 당신이 허락하신 일이라면 제 마음을 열어 그 뜻을 보게 하소서.” 그 순간 우리의 시선은 달라진다. 방해가 더 이상 짜증이 아니라 하나님의 개입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신앙은 거대한 결단보다 작은 순간의 반응에서 드러난다. 그 반응이 순종이며, 그 순종이 하나님의 나라를 열어 간다. 우리가 진정 바라는 것은 더 많은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스며드는 하루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자. “주님, 제 삶을 방해하소서. 제가 통제하려는 자리에서 벗어나, 당신이 허락하신 방해 속에서 당신의 일을 배우게 하소서.” 그 기도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방해받을 줄 아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의 일상은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해진다.
(참조: 마르시아 레바(Marcia Lebhar)는 미국의 기독교 저술가이자 교사이며, 평신도 제자화(discipleship)에 깊은 헌신을 가진 사역자입니다.)
노국환 사관
구세군런던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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