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엔가에 소속되어서 살아갑니다. 내가 어디에 소속될지는 내 선택과 관계없이 이뤄지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내가 선택하기도 합니다. 내가 현재의 부모님을 선택한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기로 결정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어느 학교에 들어가고, 어떤 회사를 다닐지, 누구와 결혼할지는 내가 선택합니다.
그리고 내가 소속된 그곳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특히 그 소속된 단체의 대표자의 영향이 큽니다. 예를 들어 사업하는 아버지가 사업을 잘 하면 온가족이 경제적인 혜택을 누립니다. 그런데 만일 사업이 망하면 하루아침에 길바닥에 내앉아야 됩니다. 내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데 가정의 대표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내 삶이 크게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아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표
이것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금한 선악과를 따먹었는데, 왜 내가 그 피해를 고소란히 같이 받아야 하느냐에 대한 대답입니다. 아담은 회사로 보면 회장이고, 가정으로 보면 아버지입니다. 그가 한 결정은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에게 그대로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아담의 모든 후손인 저와 여러분은 사업이 망해서 달동네 월세방으로 이사한 상황에서 태어난 아이처럼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죄인인 상태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것이 대개 억울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아담 할아버지와 하와 할머니가 선악과를 따먹을 때 손끝만큼도 지지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의 후손이라는 것만으로 이렇게 지옥 갈 죄인이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은혜로울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내가 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도, 내가 그분께 속하기로 결정한 후로 그분이 이루신 그 모든 은혜와 복이 그냥 내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나의 모든 죄는 용서 받고, 그분의 나라에 거저 값없이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천국은 나의 선한 행위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거저 주어지는 선물인 것입니다.
예수께 소속되려면
내가 아담에게 소속된 것은 내 선택과 상관없이 이뤄진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에게 소속되는 것은 내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내가 뭔가 자격을 갖추어야 할 것은 없습니다. 아무리 세상적으로 큰 죄를 지은 죄인이고, 인격적으로 흠이 많고, 못 배우고 못생기고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어도 상관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조건만 충족시키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셔야 할 만큼 내가 큰 죄인인데 그분이 나를 대신해서 죽으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이후로 내 삶의 주인, 신랑, 형과 오빠로 맞아들이며 그분을 사랑하고 또 그분께 순종하며 살겠다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모든 피조물까지 저주 받게 됨
성경은 아담이 하나님께 죄를 지었는데도 땅이 저주를 받아서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아담이 온 피조물의 대표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이 완전히 회복되면 피조물도 같이 회복될 것이기 때문에 그들도 이것을 소망하고 있습니다(롬 8:19-22).
본전치기가 아니다
그래서 구원은 회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잃어버린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시 다 되찾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예전 상태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즉 천 파운드를 잃어버렸는데 다시 그만큼 되돌려 받는 본전치기가 아닙니다. 수천수조 억 파운드를 되돌려 받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이 로마서 5장 뒷부분에서 아담과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것을 서로 대조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아담이 지은 죄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 한 사람의 죄 때문에 죽었다면,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한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더욱 넘쳤습니다.”(롬 5:15)
하나님께서 그 범죄 한 아담과 하와가 생명나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에덴 동산에서 추방한 후에 그 입구를 칼을 든 천사로 하여금 지키게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들어가게 될 천국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요한계시록 22장을 보면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동산과 비슷한 것 같지만 훨씬 업데이트된 모습을 보여줍니다(계 22:1-5 ).
어떻게 타락 전 아담보다 더 나은가?
가장 큰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에서 사랑 받는 아들과 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엡 1:4-5).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자녀로서의 영광을 확실히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이것을 궁극적인 소망으로 여기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먼 일일 거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살 동안 예수님이 오시면 내일이라도 될 수 있습니다. 아니면 건강식품 열심히 챙겨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해서 내 수명대로 다 산다고 해도, 현재 서른 살을 넘었으면 딱 두배만 더 살면 여러분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예수님을 믿고 있다면 정말 잘 믿으려고 하십시오. 우리가 죽으면 가지고 갈 것은 내가 가진 믿음과 그분께 한 순종뿐입니다. 이 세상의 삶에 소홀하느냐구요? 정 반대입니다. 오히려 더 견디고, 주변 사람을 사랑하고, 작은 일에 감사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정말 좋으신 분입니다. 그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전계상 목사
옥스포드선교교회 담임
ⓒ 코리안위클리(http://www.koweekly.co.uk),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