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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mmy Ga-Ken W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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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단계에 접어든 가족을 둔 영국의 교민 사회가 맞이할 장면들을
정직하게 보여주며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말해주기에
런던 공연시 반드시 봐야 할 작품!
대사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몰입형 공연의 세계에서 라메시 메이야판의 ‘러브 비욘드’는 새로움의 놀라운 출발점이다. 2024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기간 동안 어셈블리 조지 스퀘어에서 공연된 이 작품은 치매라는 렌즈를 통해 사랑과 기억, 자아의 비극적 쇠퇴에 대한 강력한 탐험을 담고 있다. 그러나 작품은 내러티브만이 아니라 시각적 스토리텔링, 수화, 놀라운 연기력이 결합되어 정서적 깊이를 보여주며 완성도를 마스터 클래스로 끌어올렸다.
‘러브 비욘드’는 치매를 앓고 있으며 청각 장애가 있는 노인 해리의 이야기다. 해리가 과거의 기억과 지금 현실을 구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요양원을 주요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인내심과 자비심을 지닌 해리의 간병인이 수화를 사용해 해리와 의사소통을 시도하지만, 해리가 한때 의존했던 바로 그 수화를 잊어버리기 시작하면서 간병인의 진행은 난관에 부딪힌다.
해리가 과거의 자신에 대한 환영과 아내 엘리스에 대한 기억이 상호작용하면서 겪는 혼란과 방향 감각 상실을 시각적으로 묘사하는데 이러한 꿈같은 가슴 아픈 기억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로맨틱한 춤과 비극적인 상실 등 가슴 아픈 장면을 통해 극대화 된다. 거울과 조명을 사용하는 등 작품의 물리적, 시각적 요소는 해리의 내적 혼란과 현재 자아와 과거의 삶 사이의 희미해지는 연결을 설명하는 데 탁월하다.
주연인 라미쉬 배우의 극중 해리 연기는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다. 신체 연기와 수화를 결합하여 혼란과 좌절, 그리고 찰나의 명료한 순간을 전달하는 그의 능력은 깊은 감동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라미쉬는 해리 역을 통해 한때 자신을 세상과 연결해 주었던 언어, 이제는 기억만큼이나 빠르게 멀어져가는 언어와의 접촉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고뇌를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하는데 충격적이다.
고령 사회로 접어들면서(런던의 한인 타운인 뉴멀든 지역을 포함해) 치매는 아마도 영국 관객들에게 매우 익숙한 듯 보인다. 한국은 가족 중 치매가 있을 경우에 집에서 돌보기 보다는 병원이나 돌봄 시설에 보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필자도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치매 환자를 둔 가족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치매 환자를 집에서 돌보며 인근 병원에서 간병인을 파견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아마도 그렇게 보고 자란 영국인에게 이 작품은 내 이야기가 되고 가족, 이웃의 이야기로 기억할 것이다.
다음은 두 차례 현지에서 공연 관람이 끝나고 이 공연을 만들어낸 프로듀서 질리안(GILLIAN GARRITY)과 마가레트(MARGARET-ANNE O’DONNELL)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1. 이 작품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나?
이 연극은 주연 배우 겸 작가인 라미쉬 자신의 이야기다. 그는 청각 장애인으로 스코틀랜드에서는 매우 유명한 배우이자 예술가이다. (참고로 라미쉬는 인도 출신의 스코틀랜드 배우) 그가 먼저 찾아와 제작 아이디어를 건넸다. 제작단계에서 수화 통역사가 있었고, 함께 검토를 시작했다. 내용면에서 치매와 나이 듦은 우리 모두에게 상당히 다가오는 주제이다.
라미쉬는 영화 작업도 하고 장애인 예술가를 이끄는 리더다. 지난 10년간 미국, 중국을 포함해 유럽 대부분 도시를 순회하며 작업을 하면서 매우 유명한 예술가로 정평이 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스코틀랜드 최고의 예술가들을 쉽게 모을 수 있었고 연출가, 작곡가, 조명, 음향, 무대 디자이너 모두 영국 최고들과 함께 작품을 구상하고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라미쉬의 아이디어와 컨셉이 그대로 도입되었고, 처음 2023년에 리허설을 시작했다.
제작시 들어간 펀드는 스코틀랜드 축제위에서 조성했고, 메이드 인 스코틀랜드 제작 지원금과 기부금, 그리고 티켓 예상 판매량을 종합해 제작 규모를 정했다. 작년 스코틀랜드에서는 8회 공연이 있었고, 2024년 프린지 축제에 처음 소개했다. 메이드 인 스코틀랜드 쇼케이스로 선정되었고, 이번 프린지 축제 중 연극상 수상의 영예를 받았고 스코틀랜드 투어가 확정되었다.
2. 창작 작업중에 어려움은 없었나?
스코틀랜드는 협업을 중시한다. 제작 극장과 프로듀서, 그리고 해외 협업까지 자연스럽게 발전한다. 이 작품은 수화를 사용하고 또 동시에 대사가 나온다. 하지만 자막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청각 장애를 가진 단체에서 자막 요청이 있었고, 이를 거부하면서 논쟁이 있었다. 프로듀서들이 오랜 고민 끝에 이들에게 먼저 그냥 볼 것을 요청했다.
라이브 공연을 보면서 동시에 자막을 쳐다보는 것을 소위 “테이블 테니스 이펙트” 라고 한다. 최근 독일의 국립극단에서 햄릿을 독일어로 하면서 영어 자막을 사용했는데 마치 탁구공이 테이블을 왔다 갔다 하듯이 매우 분주하게 자막과 배우의 표정이나 연기를 따라가느라 도저히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이 작품엔 정상인은 수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청각 장애인은 자막이 없다. 그런 점이 이 작품을 관람하는 모두에게 공평하다. 오히려 이 점이 모두가 작품을 더 집중하게 만드는 요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공연 중 사운드만으로 좌석이 떨리는 경험이 있다. 이런 부분은 청각 장애인이 촉각을 활용해 작품을 느낄 수 있도록 한 지점을 만들어 낸 것이라 상화 보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3. 이 연극을 두 번 보았다. 작품의 완성도나 공연을 본 관객의 높은 평가에 비하면 매번 관객이 좀 적지 않았나 싶다. 더 많은 관객이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
스코틀랜드에서는 포스트 팬데믹으로 인해 고령 관객들이 아직 극장으로 잘 나오지 않는다. 아울러 이 연극은 에든버러 프린지 축제엔 적합하지 않다고 관객들이 생각하는 듯하다. 프린지 축제에서는 깊은 의미를 담는 작품은 판매되기 힘들다. 축제의 관객들은 큰 즐거움만을 찾는 경향이 높기 때문이다. 저녁 식사 후 가벼운 오락을 찾기에 관객을 모으기 쉽지 않았다. 600석 극장보다는 작은 사이즈의 공연장을 선택해야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객석 사이즈를 제한하면 무대가 작았고, 무대 사이즈를 고려하면 객석이 너무 커서 적절한 공연장을 찾는게 어려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에든버러 프린지 축제의 공연장은 임시 극장이 많아서 우리에게 적합한 공연장을 찾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숙제였다고 생각한다. 가끔 공연 시작 시점이 하루 중 너무 이른 시간(12:15pm)이 아닌가 지적하는데 그건 아니라고 판단한다.
4. 극중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이 혼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있다. 의사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눈물을 흘리는 간병인이 관객의 입장으로 조금 이해되지 않아 혹시 환자가 치매로 알아보지 못하는 딸이 간병인 역할을 한 것인가 생각했다. 그런 것인가?
아니다, 극중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이 혼자서 눈물을 흘리는 소통의 어려움으로 오는 좌절감 같은 것이고, 가장 좋은 환경을 만들어 환자가 편안함을 느끼게 하려는데 생각대로 되지 않아 스스로 느끼는 감정이다. 다소 과할 수 있는 설정이지만 그 점으로 간병인을 환자가 기억하지 못하는 딸로 보는 것은 재미있는 해석이라 생각한다.
종합하면 이 작품은 사랑과 기억이 질병으로 인해 서서히 사라져가는 과정에서도 사랑과 기억의 힘을 강조하고 있으며,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중요성과 질병 속에서도 여전히 존엄성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양방향 거울이 번갈아 반사되고 드러나는 세트 디자인은 현실에 대한 해리의 분열된 인식을 강력하게 은유하는데, 최소한의 대사를 통해 인간의 조건, 기억의 연약함, 말이 통하지 않을 때에도 지속되는 사랑의 힘에 대한 가슴 아픈 성찰을 시각적 스토리텔링에 집중한 것이 작품을 진정으로 빛나게 한 부분으로 생각된다.
이 공연은 에든버러 축제를 끝으로 영국 투어가 예정되어 있다. 감히 런던에서 살고 있는 많은 한인이 볼 만한 가치 있는 작품이라 말하고 싶다. 고령화 단계에 접어든 가족을 둔 영국의 교민 사회가 맞이할 장면들을 정직하게 보여주며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말해준다. 제목을 기억하고 있다가 자녀들이 부모님과 함께 경험할 수 있길 기대한다.
ILOVESTAGE 김준영 프로듀서
junyoung.kim@ilovestag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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