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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영미 희곡의 대명사, 테네시 윌리엄스의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 ILOVESTAGE IMAGE LIBRA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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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런던의 웨스트엔드가 단순히 대중적인 뮤지컬의 중심지로만 이해되고 있으나 2024년 현재 웨스트엔드의 공연 현장은 계속해서 연극과 뮤지컬이 활발하게 혼합되어 있으며, 드라마, 코미디, 스릴러, 셰익스피어, 창작을 포함한 다양한 연극이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다. 지역적으로 조금 거리가 있으나 극장의 높은 인지도로 웨스트엔드에 편입된 국립극장(NT)과,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RSC), 400년만에 복원된 지붕없는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의 연극도 웨스트엔드로 이적하고 있고, 내년에 예정된 작품의 라인업이 탄탄해 매년 연극이 올해의 주요 볼거리로 인식되는 곳(Theatreland)이다. 그 외에도 중·소극장들이 대극장들 사이에 즐비하다.
여기에서의 공연 예술은 상업적 측면과 예술적 측면 사이에서 영국 관객의 선호도는 매우 복잡하며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런던 웨스트엔드의 공연 마케팅 접근 방식은 관객 선호도에 대한 통찰력을 드러내는데, 웨스트엔드 공연은 가족, 놀이문화, 내수를 포함한 관광객, 지역 로컬 관객, 그리고 ‘지적 자극층’(High Brow) 등 다양한 시장을 대상으로 한다. 이런 세분화는 오락 중심의 엔터테인먼트부터 지적으로 도전적인 제작물에 이르기까지 청중의 취향이 다양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하겠다. 예를 들어, 가족 중심의 작품과 놀이문화로 접근하는 공연들은 일반 극장 관객과 관광객을 포함해 더 넓은 시장에 어필하는 반면, ‘고상한’ 작품은 높은 비평과 실험적인 평가를 추구하는 비전통적인 뮤지컬 극장 관객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 또는 상당히 ‘도전적인 주제’ 카테고리에서 작품의 성공 여부는 배우나 공연, 제작사 브랜드 인지도, 비평가들의 호평, 입소문 등 다양한 요소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다.
이와 관련해 영국의 예술위(ACE)와 인문학 연구 위원회의 자금 지원을 받은 워릭 대학교(University of Warwick)의 공동 연구 논문(공연 관객과 가치 기여, Theatre Spectatorship and Value Attribution)에서는 관객들이 극장 관람 경험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탐구한 적이 있었는데, 공연에 대한 관객의 평가는 함께한 친구와의 토론 등 공연과 관련된 사회적 상호작용에 크게 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연을 통해 생성된 아이디어 및 감정과의 개인적인 연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연구에서 흥미롭게도 많은 관객들에게 ‘재미있는’ 공연은 ‘지적으로 도전적인’ 공연과 상당히 양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영국 관객들이 오락적인 측면과 예술적인 측면을 반드시 상호 배타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둘 사이의 균형을 중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아카데미에서 조사한 내용과는 별개로 실생활에서 영국인들은 공연 작품을 어떻게 대할까? 런던 사람들은 공연을 ‘엔터테인먼트’로 접근하는 경향이 매우 짙어 보인다. 이 관점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이유로 정리해 볼 수 있다.
● 공연은 유일한 밤문화 : 수도 런던이 영국의 다른 도시와의 큰 차이는 비교적 젊은 직장인들의 활기찬 분위기로 유명한데, 공연장은 대도시의 활기찬 밤문화에 기여하며 생동감 있는 에너지를 보완하는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한다. 영국에서의 공연이란 생각해보면 밤 늦게까지 즐길 수 있는 정말 몇 안되는 아니 가끔은 유일한 문화생활 중 하나이다.
● 다양한 경험 : 템즈 강변의 국립극장이나 그 너머 웨스트엔드 소호에 있는 소극장 경험은 식사, 만남 및 문화 활동과 같은 전통적인 공연장 이상의 경험을 제공하여 더 넓은 엔터테인먼트 경험의 일부로 만들어준다.
● 캐주얼한 분위기 : 대부분의 런던 공연장은 캐주얼하고 거의 비공식적인 펍 분위기를 제공하여 수준 높은 예술보다는 편안한 즐거움에 초점을 맞춘 경험을 제공한다.
● 공연장이 명소 : 런던의 공연장은 오락성 강한 공연부터 세련된 공연까지 다양한 취향에 맞는 공연을 제공하며,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공연계 자체가 런던의 많은 명소 중 하나인 갤러리, 랜드마크, 공원들과 함께 여가 활동을 위한 경쟁을 벌이며 더 넓은 엔터테인먼트 환경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다. 실제 웨스트엔드에서는 공연이 관광 시장에서 직접 마주하는 경쟁 상품 중 하나다. 런던의 극장가가 공연을 중심으로 한 영국 여행의 상징적인 명소가 된다는 점이 우리 한국과는 매우 다른 관점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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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뮤지컬 뮬랑루즈의 한 장면 ⓒ ILOVESTAGE IMAGE LIBRARY |
영국 예술위원회(ACE)는 역사적으로 상업성이 높은 작품과 보다 전통적으로 ‘예술적’인 다양한 작품에 걸쳐 균형 있게 자금을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과거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연간 250억원의 정부 지원금을 받고 있는)이 제작한 뮤지컬 레미제라블과 같이 상업적으로 무장한 뮤지컬에 공적 자금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있었으나 어느 나라나 그렇듯 그것은 예술 분야에서 정부의 역할에 대한 광범위한 논쟁에서 비롯한 것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러한 관점은 상업적으로 실행 가능하지는 않지만 문화적, 교육적, 사회적 가치가 있는 예술에 국가 자금 지원이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는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영국 공연계는 웨스트 엔드의 상업성 높은 중·대극장에서부터 지역 소극장까지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느 하나 상업적이지 않은 작품이 없으며 아니, 그보다는 ‘상업적 성공에 중점을 두지 않는’ 작품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대체로 영국 관객들에게 “엔터테이닝(Entertaining)”한 즉,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품은 예술적 가치로도 높이 평가되는 인식의 경향이 나타난다. 오락성과 예술성은 관객들에게 상호 보완적으로 인식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작품의 상업적 성공이 본질적으로 예술적 가치를 감소시키지 않으며, 반대로 상업적 성공의 결여가 자동으로 예술적 신뢰성을 높이는 것도 아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더 많은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시장성 있는 측면과 창작자의 예술적 비전을 일치시키기 위한 협상과 타협이 포함된다. 각각은 나누어질 수 없으며 서로의 힘에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ILOVESTAGE 김준영 프로듀서
junyoung.kim@ilovestag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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