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이라크 한국대사관이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에게서 1만5000달러를 빌렸다가 김선일씨가 피살된 뒤 갚았다는 사실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현지에선 은행 계좌이체가 안돼 급한 공관 운영비를 김씨에게서 빌렸다는 외교부의 해명부터 어처구니없다. 전시 상태인 이라크 사정을 감안한다 해도 공관 운영비를 교민들에게 빌려야 할 정도로 대한민국 외교부의 인프라가 허술하다는 말인가.
외교부는 한 술 더 떠 그런 것은 종종 있는 일이고 현지 공관에서 급전이 필요할 때 해당 지역 기업으로부터 빌려 쓰는 것은 관행이라고 변명하고 있다. 믿기 어렵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외교부는 당연히 부끄러워해야 할 노릇이다.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해 재외교민과 기업을 보호해야 할 공관이 도리어 그들에게 신세를 져야 한다니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을 자랑하는 우리의 외교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셈이다.
더구나 돈이 오간 시점을 볼 때 대사관의 김선일씨 피살 인지 여부에 대해 의혹이 더해질 수밖에 없다. 김씨가 돈을 전달하기 위해 대사관을 방문한 6월 10일은 무장단체에 의한 김선일씨 피랍 사실을 김씨가 알게 된 날이다. 대사관과 거액을 주고받을 정도로 끈끈한 관계인 김천호씨가 지금은 ‘대사관을 불신해서 김선일씨의 피랍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돈의 성격도 의문이다. 외교부는 이라크인 직원 월급 등 공관 운영비에 필요한 돈이었다고 설명했지만 감사원은 가건물 신축 비용이었다고 한다. 어느 경우든 대사관과 교민들간의 유착 의혹을 의심할 만한 사안인 것이다. 문제는 이로 인해 이라크 대사관이 김천호씨와 가나무역에 대해 테러 및 대피 경고 등 제대로 된 보호활동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이다. 감사원은 대사관이 돈을 빌린 이유,돈의 성격 등에 대한 의혹을 해소해야 할 뿐 아니라 해외 공관과 교민 사이에 부적절한 관행이 있다면 이를 바로잡는 조치도 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