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여인'은 복잡하다. 제1처는 중앙당 타자수 출신으로 딸 설송과 춘송을 낳았고 제2처는 장남 정남(1971년생)을 낳은 성혜림이다. 6·25 전쟁 때 아버지를 따라 월북한 배우 출신으로 월북 작가 이기영의 아들인 이평과 결혼, 두 딸까지 두었으나 강제로 이혼시켜 결혼한 것이다. 제3처가 정철 정은 형제와 딸 여정을 출산한 고영희로 1960년대 초 입북한 재일동포 출신 무용수였다. 그밖에도 홍일천과 김옥(최후의 동거녀), 러시아 여인 등 다수다. 그런데 세습왕조 제3대 왕인 김정은 생모로 2004년 사망한 고영희가 생전에 왕세자빈으로 인정받지 못한 이유는 김일성 탓이었다. 오사카(大阪) 출신의 재일동포라는 신분을 꺼렸고 장구잡이 무용수 출신이라는 점도 탐탁지 않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를 '평양의 어머니'로 우상화·신성화(神聖化)하기 시작한 건 10년 전부터였다. 조선인민군이 먼저 그녀를 찬양했고 김정일 '탄신 70년'에 맞춰 서사시로 읊어졌다. '앞마당을 방황했네/ 평양의 어머니 발걸음 소리/ 김정은 동지의 발걸음 소리…' 김정일을 애타게 기다리는 그녀를 칭송했고 2008년엔 조선노동당이 드디어 고인이 된 무용가 고영희를 찬양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작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하자 그가 생전에 제작을 지시했던 장장 85분짜리 기록영화가 '위대한 선군 조선의 어머니'라는 제목으로 지난 5월 지도층에 공개됐고 6월 중순엔 전 인민에 공개된 것이다.
그러나 국모 우상화 차원에서 제작된 이 영화에서 고영희는 ‘어머니’ 또는 김정일 육성으로 ‘우리 집사람’이란 호칭으로 등장할 뿐 실명, 출신 성분, 경력 등이 전혀 소개되지 않고 있다. 고영희가 북한에선 적대계층인 재일교포 출신인 데다 정실이 아닌 점에 미뤄 영화가 공개됐을 때 ‘고영희가 누구인가’에 대한 궁금증만 증폭시킬 뿐 선전 효과가 낮을 것이란 분석 때문에 일반 공개는 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평양의 어머니'라는 호칭만도 그녀에겐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만한 대단한 것이다. 왜? 평양은 만경대(萬景臺) 김일성 생가와 금수산기념궁전→금수산태양궁전을 비롯해 김일성 주체사상혁명 탑, 김일성 부자의 동상이 나란히 세워진 성지(聖地)이기 때문이다. 만약 '꿈의 적화통일'을 이룬다면 그들은 '수도 평양'을 새 수도로 절대로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까지 신성화, 신격화에 여념이 없어봤자 어떨까. 저승의 그녀가 오히려 왕따를 당하는 건 아닐까. 감히 '신성화'니 뭐니 신격(神格)을 모독했다는 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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