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년 전 고종황제, 우주를 품는 태극기에 한민족의 염원 담다.
백의민족과 같은 순백의 원단에 대쪽 같은 4괘가 사방에 선명하다. 붉은색과 청색은 우주를 품은 듯 역동적으로 원을 이뤄 태극문양의 국기를 탄생시켰다.
태극기가 일본의 하늘에 휘날리는 것을 보며 박영효(朴泳孝)와 일행들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1882년 9월 25일! 태극기가 최초로 탄생하여 게양된 날이었다. 고종(高宗)황제의 명을 받고 일본으로 간 특명전권대사(特命全權大使) 겸 수신사(修信使) 박영효는 본 임무 외에 특명 곧 국기를 제작하여 국제적으로 드러내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날 게양된 태극기에 대해 일본 일간지 ‘시사신보’는 1882년 10월 2일자 신문에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실었다.
(번역)[이때까지 조선에는 국기로 부를 만한 것이 없어 지난번에 탁지부를 방문한 중국의 마건충이 조선의 국기는 중국의 국기를 본받아 삼각형의 청색바탕에 용을 그려야 하며, 본국인 중국은 황색을 사용하나 조선은 중국의 동방에 위치하는 나라이므로 동쪽은 청색을 귀히 여긴다는 뜻에 따라 청색바탕을 이용해야 한다고 지시하였다. 이에 국왕은 분히 여겨 “절대로 중국의 국기를 흉내내지 않겠다” 하여 사각형의 옥색바탕에 태극원(두 개의 소용돌이 문양)을 청색과 적색으로 그리고, 국기의 네 귀퉁이에 동서남북을 의미하는 4괘를 그린 것을 조선의 국기로 정한다는 명령을 하교하였다고 한다.]
일본도 중국도 국기를 갖고 있었으나 국기의 의미와 필요성을 몰랐던 조선은 일장기를 태워 곤욕을 치르게 된다. 결국 그 사건은 일본이 우리를 공격을 하는 구실이 되어 강화도 조약까지 맺게 됐다. 이러한 일로 고종은 국기의 필요성을 절감해 국기를 만들기 위해 고심했다. 고종은 우리나라를 속국인 양 취급하고 간섭하는 중국의 행태에 심한 모멸감을 받았다. 이러한 중국과 일본의 집요한 내정간섭과 침략의 야욕 속에서 태극기는 탄생했다.
태극기는 우주와 더불어 끝없이 창조와 번영을 소망하던 한민족(韓民族)의 이상이 담겨 있다. 또한 흔들리지 않는 자주성을 국기에 담고자 했던 고종의 고심 끝에 탄생한 염원이었다. 그렇기에 세계 어느 곳에 있든 태극기는 우리 자신이 대한민국 국민임을 상기시키며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힘을 발휘한다. 많은 나라에 국기가 있으며 그 역사와 의미를 강조한다. 그것은 바로 국기에는 국가가 세워진 건국이념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국기인 태극기는 휘몰아치는 역사의 혼란 속에서 탄생의 뿌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런 현실이 부끄럽게 느꼈던 한 개인(송명호 교수)의 많은 노력 끝에 불과 14년 전에 태극기의 탄생의 진실이 밝혀졌다.
태극기가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디자인이라는 것은 우리보다 세계인들이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어제의 역사를 잊는다면 내일의 미래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역사가 말해준다. 이제는 한민족의 염원이 담긴 태극기의 의미와 뿌리까지 정확하게 알아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출처: 글마루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