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1장4] 하나님에 대한 소개/확장되신 하나님(둘-셋이신 하나님)
[성경 말씀](계1:7-8)
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생명의 말씀]
하나님의 일꾼 된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름을 받아 예수님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더욱 넘치기를 빕니다. 본문은 하나님에 대한 소개에 대해서입니다. 그런데 두 번의 소개가 있습니다. 요한이 한 번 소개하였고 또 주 하나님께서 친히 한 번 소개하셨습니다. 요한 형제는 주님을 장차 오실 분으로 소개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친히 소개하시되 전능한 자요 장차 오실 분으로 소개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을 각각 분리하여 두 번 소개하셨을까요? 우리는 이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본문과 관계된 성경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7 볼지어다
지켜보라는 말입니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이 말은 예수님께서 오시는 형태가 공개적으로 오실 것을 비유한 말입니다.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이 말은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을 모두가 눈으로 보게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이 말은 예수님의 원수 된 자들까지도 볼 것이라는 말로서 모든 것들이 드러날 것을 말합니다.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이 말은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반응을 말하는 것으로서 가슴을 치고 후회하며 슬퍼할 것입니다.
그러하리라 아멘
이 말은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고 요한은 확신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요한은 세례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님의 제자로 개종한 자로서 처음부터 모든 사실들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요한이 확신 있게 강조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형태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이유는 먼저 민간에 많은 거짓 그리스도의 속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하여도 속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번개가 번쩍임같이 각인이 볼 수 있도록 오실 것입니다.
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여기에서 ‘주 하나님’이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말씀하시는 것으로서 그분은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창조자이시며 유일하신 참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장차 오실 하나님에 대해 친히 소개하신 것입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여기에서 ‘알파’란 헬라어 알파벳의 맨 첫 글자이며 ‘오메가’란 맨 끝 글자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맨 처음과 나중이신 하나님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분으로서 시작이 되시며 또 끝이 되십니다.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여기에서 ‘이제도 있고’란 현재에 계셔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말하고 ‘전에도 있었고’란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존재하셨던 하나님을 말씀하시는 것으로서 만물을 창조하신 주인이 되신 분을 말합니다. 그리고 ‘장차 오실 자’란 심판주로 오셔서 모든 옛 창조에 관한 것들을 심판하실 하나님을 말합니다.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이 말은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는 것으로서 모든 일에 능치 못함이 없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관해서는 크게 둘로 나누어 말할 수 있는데 그 하나는 천지와 만물 창조요 또 하나는 예언을 이루심입니다. 예언이란 장차 될 미래 일을 미리 아시고 그의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후 때가 되면 그 일을 이루시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7절과 8절은 장차 오실 분에 대한 소개로서 한 조를 이루는데 7절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요한이 소개하고 있고 8절은 절대 통치자이신 주 하나님 곧 아버지 하나님께서 자신을 친히 소개하신 것입니다. 이 두 절은 모두 장차 오실 분에 대해 소개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에 대한 소개는 아버지와 아들을 분리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뿐만이 아니라 신약 거의 전체에 이 사상이 나타나 있습니다. 관계된 성경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구약시대에 일반적으로 볼 수 없었던 영이신 여호와
[출 33:20-23]
20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2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곁에 한 곳이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섰으라
22 내 영광이 지날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23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이 글은 모세 형제님이 기록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살 자가 없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지나가실 동안 손으로 모세 형제를 덮었다가 지나가신 후에 손을 거두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하나님의 형상 중 등은 볼 수 있지만 얼굴은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볼 수 없는 분이십니다.
[겔 1:26-28]
26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
27 내가 본즉 그 허리 이상의 모양은 단 쇠 같아서 그 속과 주위가 불 같고 그 허리 이하의 모양도 불 같아서 사면으로 광채가 나며
28 그 사면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곧 엎드리어 그 말씀하시는 자의 음성을 들으니라
이 말은 에스겔 형제님이 본 여호와의 형상과 모양입니다. 그 모양이 사람의 모양 같고 허리 이상은 단 쇠 같고 허리 이하는 불같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단 7:9-11]
9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 보좌는 불꽃이요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
10 불이 강처럼 흘러 그 앞에서 나오며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여기에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란 여호와 하나님을 말합니다.
[단 7:13-14]
13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여기에서 ‘인자 같은 이’란 그리스도를 말하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란 여호와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다니엘 형제가 본 모습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을 분명하게 나누어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아들이신 증거
[요 3:16-17]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여기에서 ‘독생자’란 외아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하나님께서 외아들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은 외아들을 주신 이유입니다. 그 이유는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함입니다.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이유에 대한 설명입니다.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요 1:14]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 말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사람들 가운데 오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설명인데 아들이 어떻게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는가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둘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장절)------(존재)-------(하신일)---------(이름)-----(계신장소)
(요3:16-17)--하나님------아들을 주신 분----여호와----하늘 보좌
-----------아들-----구원을 위해 오신 분---예수------세상
(요1:14)-----말씀-------육신이 되심-------예수-----사람들과 함께 계심
그러므로 말씀은 아들이십니다.
여기에서 말씀이라고 할 때는 그 아들의 존재가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이고
아들이라 함은 아버지 하나님과 어떤 관계인가에 대한 설명입니다.
아버지의 품속에 계신 말씀 곧 아들이 세상에 오셨음
[요 1:18]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여기에서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란 외아들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말씀 곧 아들은 세상에 오시기 전 아버지 품속에 계셨습니다. 그러다가 신약시대에 아버지께로부터 보냄을 받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 품속에 계신 아들이 오신 것이지 아버지가 오신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여전히 하늘 보좌에 계시고 아들은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아들은 하늘을 우러러 아버지께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존재)---(아버지와의 관계)---(오시기 전 계신 곳)---(오신 후 계신 곳)
말씀---------아들-----------아버지 품속----------세상
요한복음 1장 1절의 세밀한 해석
[요 1:1]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이 말은 말씀에 대한 소개입니다. 이 말씀을 더 자세히 분석해 보겠습니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은 말씀이 계신 때를 말합니다. 말씀이 계신 때는 태초입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은 말씀이 누구와 함께 계셨는가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여기에서의 하나님은 아버지를 말합니다. 그 증거는 ‘함께’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들과 아버지를 분리해서 위격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씀은 아들을 말하고 하나님이란 아버지를 말합니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이 말은 말씀의 종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 말씀의 종류는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에서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중간에 놓인 말씀과 함께 계신 분과 끝에 놓인 하나님과 동일하게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간에 말한 하나님은 말씀 곧 아들과 함께 계신 아버지를 말한 것이고 끝에 놓인 하나님은 말씀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러니까 말씀 그 자체의 종류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렇게 보지 않고 끝에 놓인 하나님이라는 말을 중간과 동일하게 본다면 아들은 곧 아버지가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말씀의 종류가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 증거는 두개가 있습니다. 첫째는 요한복음 1장 1-18절까지가 몽땅 말씀과 관계하여 소개하고 있다는 것과 또 함께 라는 말을 썼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장은 '어둠에 빛을 비추는 방법'을 말합니다. 그리고 1장은 크게 셋으로 나누어 집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과 세례요한의 증거와 빛 비춤이 확장되어 가는 방법에 대해서 말합니다.
[요1장] 어둠에 빛을 비추는 방법
1.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요1:1-18)
2. 세례요한의 증거(요1:19-34)
3. 빛 비춤이 확장되어 가는 방법(요1:35-51)
이와 같습니다. 이 중에서 말씀과 관계하여 소개하고 있는 1절부터 18절까지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요 1:1-18]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은 말씀이 계신 때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은 말씀과 함께 계신 분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의 하나님이란 아버지를 말합니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이 말은 말씀의 종류가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의 하나님이란 아버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누구인가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러니까 말씀의 종류를 말합니다. 그 종류는 하나님이십니다.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이 말은 말씀과 만물과의 관계에 대한 설명입니다. 만물은 말씀으로 말미암아 창조 되었습니다.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이 말은 말씀 안에 있는 생명이 사람들에 대한 기능은 무엇이며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대한 설명입니다. 말씀 안에 있는 생명은 사람들의 빛입니다.
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이 말은 빛이 어둠에 비취되 어둠에 처한 세상이 빛을 알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곧 빛의 소개자가 필요했음을 말해 줍니다.
6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이 말은 하나님께 보냄 받은 빛의 소개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설명입니다.
7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 안에 있는 참 빛의 소개자가 온 목적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 목적은 참 빛에 대하여 소개하여 사람들로 믿게 하려 함입니다.
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이 말은 참 빛에 대하여 요한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설명입니다.
9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참 빛이 세상에 왔으나 지은바 된 세상이 그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였다는 말입니다.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참 빛이 자기 땅에 왔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인 유대인들이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믿고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합니다.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이 말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구로 부터 태어나는 가에 대한 설명입니다.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 말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 대한 설명입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모습이었습니다.
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이 말은 요한이 증거했던 분 곧 예수님에 대한 설명입니다.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이 말은 요한의 증거 결과로 인하여 사람들이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받은 은혜의 분량에 대한 설명입니다.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이 말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강조점을 둔 설명입니다. 은혜와 진리를 가져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는 구약과 신약을 구분하기 위하여 모세가 가져온 것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신 것을 동시에 소개하고 있으나 여기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신약과 구약을 구분 짓고 신약의 시작이 되는 기준선을 제시하고자 한 것입니다.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이 말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볼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하여 어떤 역할을 하게 되셨는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볼 수 없었던 영이신 하나님을 말씀이 육신이 되신 아들이 볼 수 있도록 나타내셨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다시 정리하면
말씀이 계신 때와
말씀과 함께 계신 분과
말씀의 종류와
말씀과 만물과의 관계와
말씀 안에 있는 생명이 사람들에 대한 기능과 그 역할은 무엇인가와
말씀 안에 있는 생명 곧 참 빛의 소개자가 누구인가와
말씀 안에 있는 참 빛의 소개자가 온 목적과
말씀 안에 있는 생명 곧 빛에 대하여 요한이 어떤 존재인가와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을 어두운 세상은 어떻게 대하였는가와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을 유대 백성들은 어떻게 대하였는가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을 영접하는 자에게 어떤 권세를 주시는가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을 영접하는 자가 누구로부터 태어나는가와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의 모습이 어땠는가와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을 그 소개자 요한은 어떻게 증거하였는가와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사람들이 받은 은혜의 분량은 어땠는가와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오신 것이 무엇인가와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볼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하여 어떤 역할을 하게 되셨는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1-18절까지는 몽땅 말씀과 관계하여 소개 및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절에 기록 된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라는 말은 말씀의 종류가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이라고 봅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종류요 근본이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태어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 외아들을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라는 말을 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 1:18]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하나님은 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몇몇 형제들을 통해서 그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출애굽기 33장 20-23절을 보면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곁에 한 곳이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섰으라 내 영광이 지날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 에스겔, 다니엘, 요한 형제는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그 형상과 모양은 보았으되 얼굴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아버지 품속에 있는
이 말은 말씀 곧 아들이 이 땅에 오시기 전에 계셨던 곳에 대한 설명입니다.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이 말은 외아들이 육신을 입고 오심으로써 볼 수 없었던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나타내셨다는 말입니다.
[요 3:16]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주신 것은 독생자 곧 외아들이셨습니다.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은 외아들을 주신 이유입니다. 그 이유는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요 3:17]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주신 것은 그 아들입니다. 그러니까 마리아 태를 통해 육신을 입고 태어나셨기 때문에 아들이 아니라 오시기 전에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며 그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은 아들을 보내신 목적을 말합니다. 그 목적은 세상 구원입니다.
[요 8:42]
42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여기에서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란 이 땅에 오시기 전에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태어난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왔음이라’란 마리아의 태를 통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아들의 존재는 말씀이시고 말씀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볼 때 아들이시며 아들이란 아버지로부터 출발점을 가졌다는 말입니다. 아버지 없는 아들은 없습니다. 아들이란 모두 아버지가 있습니다. 아들이 스스로 존재하는 아들이 있다면 그는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입니다. 여기에서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라는 말은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아버지로부터 태어났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에 하나님 홀로 계시던 때가 있고 어느 시점에서 말씀 곧 아들을 낳으셨으며 그 아들 곧 말씀을 통하여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요 18:37]
37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여기에서 ‘났으며’란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아버지로부터 태어났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왔나니’란 그리스도께서 보냄을 받고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을 말합니다.
[골 1:15]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여기에서도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말씀 곧 아들은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에 하나님께서 낳으신 분이고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태어나신 시기는 만물 창조 전입니다. 아버지는 낳았으니까 아버지이시고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태어났으니까 아들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은 반드시 출발점이 있으며 아들의 출발점은 아버지입니다.
순서--하나님 홀로 계시던 시대--아들을 낳으심--아들로 말미암아 만물이 창조됨
[고전 8:6]
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여기에서도 한 하나님과 한 주가 계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설명하고 있고 또 한 주가 계시는데 그분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물은 아버지에게서 났고 아들로 말미암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만물을 낳으신 분은 아버지이시고 아들 곧 말씀은 낳는 수단이 된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아버지가 아들 곧 말씀으로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천지와 만물이 창조 되었습니다.
구주의 탄생
[눅 2:11-12]
11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구주께서 탄생되셨습니다. 전에는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영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셨고 아들 곧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사람의 모양으로 오심으로써 볼 수 없었던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나타내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을 입었다고 했으니 영이신 하나님이 육의 몸을 입으신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아버지는 볼 수 없는 영이시나 아들 곧 말씀을 보내사 그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몸을 가지셨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통한 체현이라고 말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신약시대에 그 아들을 통해서 체현 되셨습니다. 모세, 에스겔, 다니엘, 요한 형제님은 모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얼굴은 보지 못합니다. 얼굴을 보고 살 자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심으로 하나님과 똑 같은 형상과 모양을 한 그 아들이 하나님을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육의 몸으로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니까 영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통하여 체현 되셨습니다.
구주되신 예수님의 외모
[사 53:2-3]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이 말은 하나님의 체현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말한 것입니다.
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이 말은 예수님의 고난을 말합니다. 가난으로 인한 고통과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아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이 말은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말한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호칭의 바른 인식
[롬 15:6]
6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여기에서는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고 해석해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하나님을 따로 말하고 있습니다.
[고후 1:2]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여기에서도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따로 말하고 있습니다.
[고후 11:31]
31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나의 거짓말 아니하는 줄을 아시느니라
여기에서 하나님을 예수의 아버지라고 설명해 놓았으며 여기에서도 따로 말하고 있습니다.
[고후 13:13]
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여기에서는 아들과 아버지와 하나님의 영을 각각 따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갈 1:3]
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여기에서도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각각 따로 말하고 있습니다.
[갈 1:4]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여기에서도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설명해 놓았으며 따로 말하였습니다.
[엡 1:2]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여기에서도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분리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엡 4:5-6]
5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6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여기에서도 주도 한 분이시고 하나님도 한 분이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 1:18]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나 아버지 품속에 계신 외아들이 하나님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나타내셨다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아버지 품속에 계신 말씀이 육신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씀 곧 아들은 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 여호와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나타내셨습니다.
신약시대에 아버지와 아들이 존재적으로 분리되신 증거
[계 1:1]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여기에서 ‘그’란 예수님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란 계시를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이것은 상징으로서 하나님을 아버지와 아들로 각각 분리하여 설명한 것입니다.
[계 5:1]
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여기에서 ‘보좌에 앉으신 이’란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오른손에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이 있습니다.
[계 5:7]
7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시니라
여기에서 ‘어린 양’이란 아들 예수님을 말합니다. 그리고 ‘보좌에 앉으신 이’란 아버지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아들 예수님이 하나님의 오른 손에서 책을 가지셨다는 말입니다.
[고전 15:23-28]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이 말은 부활 순서에 대해서 말한 것입니다. 맨 먼저 첫 열매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셨고 그 다음은 주님 다시 오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 즉 은혜시대 끝에 첫째 부활에 참여할 이기는 자들을 말합니다.
24 그 후에는 나중이니
이 말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한 자들의 부활 시기를 말합니다.
[계 20:4-5]
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이 말은 순교자들 보다 더 큰 복을 받은 자들을 말합니다.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이 말은 순교자들을 말합니다.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이 말은 대 환난 시대에 순교한 자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두 종류의 이기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하니
이 말은 두 종류의 이기는 자들이 천년 왕국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다스리는 기간에 대한 설명입니다.
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여기에서 '이는 첫째 부활이라'라는 말은 4절의 결론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4절 끝에 붙던지 5절 맨 처음에 놓였으면 이해하기가 훨씬 쉬웠을 것인데 왜 이렇게 쓰여 있는지 아쉬움이 많습니다. 그리고 괄호 안에 있는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라는 말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한 자들의 부활 시기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 바꿔 보겠습니다.
5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말은 4절의 결론으로서 보좌에 앉은 자들과 순교자들 곧 두 종류의 이기는 자들에 대한 결론입니다. 그러니까 은혜시대 끝 곧 천년 왕국 전에 있을 부활을 첫째 부활이라고 합니다. 이들이 천년 왕국 전에 살아서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왕국 시대에 천년 동안 왕 노릇하게 될 것입니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여기에서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이란 죽은 자로서 첫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한 자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죽은 자들 중 첫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한 자들이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천년 왕국 끝에 있을 백 보좌 심판 때에 둘째 사망의 부활로 나와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두 종류의 부활 중 첫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한 자들의 부활 시기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러므로 두 종류의 부활이 있습니다. 그 첫째 부활에 참여한 이기는 자들과 둘째 부활에 참여할 신앙의 패배자들의 부활 시기는 천년 차이가 납니다.
[요 5:29]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이 말은 두 종류의 부활에 대한 설명입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계 21:7]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이 말은 천국 유업을 얻을 자들과 하나님의 아들이 될 자들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기는 자가 얻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패배자들은 유업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는 자들의 두 종류가 있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과 선을 행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선을 행하는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천 년 전에 부활할 것이며 악을 행하는 자들은 천년 뒤에 심판의 부활로 나와서 크고 흰 보좌 심판 때에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이 말은 예수님께서 천년왕국 끝에 나라를 아버지께 바친다는 말씀입니다.
[계 20:11-15]
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이 말은 죽은 자 심판의 배경에 대한 설명입니다.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이 말은 심판 받을 자들이 서 있는 위치에 대한 설명입니다. 보좌 앞에 서 있다고 합니다.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이 말은 심판 기준이 될 책들에 대한 설명입니다. 두 종류의 책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곧 생명책이라
이 말은 또 다른 책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 또 다른 책은 생명책입니다.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이 말은 죽은 자들이 어떻게 심판 받는 가에 대한 설명입니다.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두 종류의 책이 있습니다. 책들이란 행위를 기록한 책을 말하고 또 다른 책이란 생명책입니다.
[계 3:5]
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이기는 자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흐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신앙의 패배자는 생명록에 기록되어 있으나 흐려져 있고 믿지 않는 자들은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책은 믿었느냐 안 믿었느냐 또는 잘못 믿었느냐를 결정짓고 행위 책이란 믿는 자들이나 안 믿는 자들이나 모든 사람들의 행위가 기록된 책입니다.
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여기에서 '바다'가 상징하는 것은 세상입니다. 요한 계시록 13장 1절에 기록된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7절을 보면 세계 여러 나라를 다스릴 자를 말합니다. 다스리는 자란 왕을 말하고 세계 여러 나라를 다스릴 자란 황제를 말합니다. 왕이 어떤 사람입니까? 정치인 입니다. 정치는 세상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바다는 세상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세상이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었다는 말입니다.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이 말은 바다가 죽은 자들을 내어 준 이외 또 다른 곳에서 죽은 자들을 내어 준 것에 대한 설명입니다. 여기에서 사망이란 죽음을 말하고 음부란 죽은 영혼들이 죽은 자 심판 때까지 가둬 두는 불타는 장소입니다.
[눅 16:22-24]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이 말은 거지가 죽은 후 그 영혼이 어떻게 어디로 갔는가에 대한 설명입니다.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의 품으로 상징된 구약시대 때 낙원에 갈 영혼들이 있는 장소를 말합니다.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이 말은 부자의 육신이 어떻게 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입니다.
23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이 말은 부자의 영혼에 대한 설명입니다. '음부에서 고통 중에'란 음부가 고통 받는 장소라는 말이고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란 부자가 불꽃 가운데서 고민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음부란 고통 받는 장소요 불꽃이 있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크고 흰 보좌 심판 때에 사망과 음부가 죽은 자들을 내어 줬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음부란 크고 흰 보좌 때까지 영혼들을 가둬 두는 불타는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바다로 상징된 세상에도 죽은 자들의 영혼들이 있고 음부에도 죽은 자들의 영혼들이 있습니다.
14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이 말은 맨 나중에 불 못에 던지울 것들에 대한 설명입니다.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이 말은 불 못에 던지울 자들에 대한 설명입니다.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불 못에 던져진다는 말입니다.
25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 하시리니
여기에서 '저가'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모든 원수'란 순종치 않는 모든 무리를 말하고 '그 발아래'란 굴복시키는 것을 말하고 '둘 때까지'란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는 기간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원수를 발 아래 두실 때는 크고 흰 보좌 심판을 말합니다. 그 심판은 모든 죽은 자 심판으로서 천년 왕국이 끝난 후 새 하늘과 새 땅 시대가 시작되기 전에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는 기간은 천년 왕국과 그 끝에 있을 크고 흰 보좌 심판까지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이 말은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 원수는 사망입니다. 그러므로 새 하늘과 새 땅 시대에서는 사망 곧 죽음이 다시는 없습니다. 이 말은 천년왕국 시대에는 사람이 죽는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27 만물을 저의 발아래 두셨다 하셨으니
이 말은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께 굴복 되었다는 말입니다.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저의 아래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이 말은 만물을 예수 그리스도의 발아래 두셨다는 말의 의미에 대한 설명입니다. 곧 만물을 예수 그리스도의 발아래 두셨으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그 만물에 들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만물 위에 계신 분이십니다.
28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여기에서 '저'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그 때에'란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된 때를 말하고 '복종케 하신 이에게'란 하나님 아버지를 말하고 '복종케 되리니'란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복종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케 된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아버지 하나님께 복종케 되신다는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이 말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복종케 되신 이유를 말합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시기 때문입니다.
일체를 아버지가 아들 되신 것처럼 존재적으로 한 분으로 이해한다면 어떻게 아들이 아버지께 복종하며 나라를 바칠 수가 있겠습니까? 영이신 여호와는 하늘에 계시고 여호와의 품속에 계신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심으로 존재적으로 분리 되셨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고전 8:6]
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여기에서 '한 하나님'이란 아버지를 말하고 '한 주'란 그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이 계시고 또 한 주님이 계십니다. 영이신 하나님께서 신약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몸을 가지셨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형상과 모양을 사람들 가운데에 나타내셨고 아들은 아버지와 똑같은 형상과 모양을 가지고 오셔서 사람들 가운데에 거하셨습니다. 이것을 확장되신 하나님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종합적으로 정리하기
요한복음 14장을 보면 한 영 안에 삼위가 존재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체의 방면이 아니라 영의 방면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두 방면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존재적인 방면과 영이신 방면의 두 방면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거의 중요한 모든 것들을 두 방면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중요한 거의 대부분의 주제들을 두 방면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절대로 부인할 수 없습니다.
만약 부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성경을 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정죄하는 사람은 나는 소경이라서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합니다 라고 스스로 선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에 대해서도 두 방면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 중 영의 방면은 한 영 안에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오셨습니다.
[요 14:23]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 말씀을 지킬 것이요
그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 우리가 저에게 와서 성전 삼고 살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영의 방면을 말합니다.
영의 방면은 한 영 안에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계십니다.
이 한 영 안에 계시는 하나님은 분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존재하시는 방면으로는 영이신 하나님과
몸을 입으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존재적으로 분리됩니다.
물론 영으로 오신 아버지는 아들 안에 그 영으로 계십니다.
그러나 존재적인 방면으로는 단 쇠 같고 불같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들 안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 여호와는 하늘 보좌에 계십니다. 그러니까 아들은 하늘을 우러러 아버지께 기도하시고 또 하늘에서 아들에게 음성이 들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말하기를 내 안에 아버지가 계신다는 말은 영으로 오신 아버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아버지도 못 박히신 것이 됩니다.
이제 존재적인 방면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품 안에 말씀이 계셨습니다.
그 말씀이 신약시대에 육신을 입고 사람의 모양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신약시대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과정을 거치신 것입니다.
말씀이 육체의 모양으로 오셨습니다. 이 때 한 번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육체가 죽임을 당하셨고
다시 살아나셨으며 부활안에서 살리는 영이 되셨습니다.(고전15:45)
이 때 부활 안에서 또 한 번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육신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의 네 과정을 거치신 중에
두 번의 ‘되었다’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두 번의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을 입으실 때 한 번의 변화가 있었고 육신이 부활하실 때 다시 한 번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변화의 과정으로 인해 아버지는 아들을 통해서 체 곧 몸을 가지게 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신약시대에 그 아들을 통하여 몸을 갖게 되셨고 확장 되셨습니다.
이것을 확장되신 하나님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삼위일체 이론은 제가 알기로는 325년 니케아 종교 회의 때에
채택 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이 이론을 믿고 있으며 다른 이론을 주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정죄하며 죽이는 도구로 삼아 왔습니다.
이 삼위일체 이론의 잘못된 이해는 타락한 가톨릭에서 물려받은 누룩입니다.
1517년에 종교 개혁을 한 이후에도 이 거대한 누룩덩어리를 버리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나왔습니다.
참으로 웃기는 것은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신학자들과 목자들이
삼위일체이론을 주장하면서도 그것을 설명 못한다는 것입니다.
난 아직까지 삼위일체 이론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하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하였습니다.
존재적으로 삼위에 맞춰 설명하시는 분은 삼위 부분은 잘 설명하다가도
일체와 관련된 성구를 질문하면 자기가 한 말이 스스로 걸림이 되어
더 이상 말을 못하고 말문이 막혀 버립니다.
또 일체 쪽에 치우친 사람은 삼위와 관계된 성구로 질문하면
자신이 일체부분을 설명했던 자기 말이 걸림이 되어 더 이상 설명을 못하게 됩니다.
위격으로 삼위도 맞고 체도 일체가 맞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잘못 된 건가요?
일체 부분에 대한 이해를 잘 못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체를 갖기 전에도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도 존재하셨습니다.
그러나 영으로 존재하셨습니다.
그 여호와의 영을 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은 존재하셨지만 체가 없이 영으로 존재하셨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 체 곧 몸을 갖게 되셨습니다.
그 일체 곧 여호와의 본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시대에는 아버지의 품속에 존재하시다가(요1:18)
아버지께서 말씀 곧 외아들을 세상에 내어 주셨고(요3:16-17)
그 아들 곧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셨습니다.(요1:14)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본체이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일체를 갖게 되신 시점은 신약시대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일체 곧 몸이 존재하지 않으셨고 영으로 존재하셨으며
신약시대 때부터 그 아들을 통하여 일체를 갖게 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체에 영이신 여호와가 포함되지 않습니다.
아버지께서 그 일체를 갖게 되신 과정을 살펴보면 아버지가 아들 되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 품속에 계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단 쇠 같고 불같으신 아버지는 여전히 하늘 보좌에 계시고
아들은 아버지께 기도하셨으며 아버지는 하늘에서 음성을 주신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 속에 계시다는 말은 또 다른 방면인 영으로 오신 방면을 말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두 방면으로 존재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하늘 보좌에 계십니다.
그러나 또 한 면으로는 그 영으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우리를 성전삼고 우리의 영 안에 오셨습니다.(요14:23)
그러므로 일체란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구약시대에 아버지 품속에 계셨던 말씀 곧 아들이
신약시대에 세상에 보냄을 받고 육신을 입음으로써 존재적으로 분리되셨습니다.
영의 방면을 볼 때 아버지와 아들은 한 영 안에서 함께 존재하시나
존재적인 방면으로는 여호와는 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 영으로 하늘에 계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육체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존재적으로는 아버지와 아들이 분리됩니다.
물론 존재적으로 분리 된 상태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에 영으로 아버지가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 일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이해하십시오.
아버지는 영으로 계시고
아들은 육체를 입고 오심으로 아버지의 보이지 않는 몸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를 보는 방법은
아버지와 똑같은 모양으로 사람들 가운데 나타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늘에서 소리가 난 것은 바로 하늘에 계신 영이신 여호와의 음성입니다.
땅에서 음성을 들은 예수 그리스도는 육체로 계셨습니다.
일체를 이렇게 이해해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일체를 한 존재로 본다면 하늘에서 난 소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아들이 침례를 받다가 말고 하늘로 순간 이동하신 후 하늘에서 음성을 들려주신 후
또 다시 순간 이동하셔서 세례(침례)를 받으신 것입니까?
또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기도는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까?
아들이 운명하시기 직전 아버지께 하신 기도는 자신이 자신에게 하신 기도입니까?
만약 일체를 한 존재로 이해하신다면
구약의 여호와께서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로 오셨고
한 존재이신 아버지가 아들로 오셨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면 구약시대의 아버지가 신약 시대에 아들로 오셨고
그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아버지도 함께 못 박혔다는 말이 됩니다.
이것은 초대교회 때에 이단으로 정죄 받은 성부 수난설에 해당합니다.
일체를 아버지와 아들을 한 존재로 본다면
아들이 못 박히실 때 아버지도 함께 못 박히셨다는 말이 됩니다.
아니라면 그분은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는 괘변을 늘어놓는 것과 같습니다.
일체 곧 한 몸이란 그런 말이 아닙니다.
여호와는 영이시기 때문에 구약시대에는 체 곧 몸이 없고 영으로 존재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일체를 갖기 전에도 영으로 존재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영으로 존재하시는 것은 변함없습니다.
그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보이는 몸으로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시는 방법으로써 그 아들 곧 말씀이 육신을 입게 하시고 그 아들을 통하여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를 보는 방법은 아들을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사야 9장 6절과 요한복음 14장에 나와 있는 빌립에게
아버지를 보는 방법으로서 아들을 보라고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몸은 예수이십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몸을 입기 전이나 후나 여호와는 영체로 계십니다.
그러므로 일체가 맞기는 하지만 일체라는 말이 한 존재라는 개념이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만약 일체라는 개념이 한 존재라면 그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 혼자 일인이역을 하신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계 5:1]
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여기에서 보좌에 앉으신 분을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고 우기지는 않겠지요?
분명히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계 5:7]
7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시니라
여기에서 어린 양을 예수님이 아니라고 우기시지는 않겠지요?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오른 손에서 책을 취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설명 할 것입니까?
대답해 보십시오.
구약의 여호와께서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로 오셨고
한 몸이란 말이 한 존재로 이해한다면
어린 양이 보좌에 앉으신 분의 오른 손에서 책을 취하신 것은 요한이 환상을 잘못 본 것입니까?
아니면 성경이 잘못된 것입니까?
아니면 그 두 분은 두 분이 아니라 한 분이라고 우기실 것입니까?
깨달으십시오.
신약 안에서 확장되셨습니다.
그러니까 존재적으로 두 분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 우리에게는 한 분 하나님과 한 주가 계시는 것입니다.
[단 7:13-14]
13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여기에서 ‘인자 같은 이’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리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란 여호와 하나님을 말합니다.
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여기에서 ‘그’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천년 왕국시대에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라를 주시는 것입니다.
[고전 15:24-26]
24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5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 하시리니
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24절을 보면 나라를 아버지께 바친다고 합니다.
25절을 보면 원수를 발아래 둘 때까지 왕 노릇하신다고 합니다.
26절을 보면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에 대한 설명입니다.
[계 20:14]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져졌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크고 흰 보좌 심판 중 맨 나중에 심판 받는 원수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리고 이 크고 흰 보좌 심판은 천년 왕국 끝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천년 왕국시대 동안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 노릇하신 다음에
천년 왕국 끝에 크고 흰 보좌 심판을 통해서 죽은 자를 심판하신 후
맨 나중에 사망을 심판하심으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다시 죽음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예수님이십니까? 그렇게 한 몸입니까?
그렇다면 누가 누구에게 나라를 받고 또 누가 누구에게 나라를 바친다는 것입니까?
설명해 보십시오.
못하시면 안 됩니다. 분명히 설명해야 합니다.
깨달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와의 본체이십니다.
이 일체에 대해서 잘못 이해한 믿는 이들이 생각하기를
아버지가 아들 되신 것처럼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품속에 계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지 여호와께서 육신이 되신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대해서 명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위격)-------------(형태)--------(계신 장소)-----(하신 일)
여호와 하나님------영이심-------하늘에 계심---보좌에서 말씀하심
품속에 계신 말씀---육신이 되심---세상에 오심---기도, 음성들음, 십자가를 지심
이와 같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영이시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육체로 오신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시기 전에는 여호와의 체 곧 몸이 없으셨습니다.
몸이 없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영으로 존재하셨습니다.
여호와는 영이시지 영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구약시대에는 체 곧 몸이 없으셨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일체’란 사람의 모양 곧 육신의 몸을 말합니다.
이것이 사실이며 여기에서 분명하게 체 곧 몸의 개념이 무엇을 말하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존재적으로 말하면 구약시대에는 체 곧 육신의 몸은 없으셨으나
존재하신 영이신 하나님 안에 말씀 곧 아들과 그 영이 계셨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하나님께서 확장 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을 입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이시며
하나님은 그 아들을 통해서 사람의 육신 곧 몸을 갖게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 아버지와 아들은 존재적으로 분리되셨으며
아버지는 아들을 통해서 확장 되셨고
아들은 아버지의 모습을 육 있는 모양으로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존재적 분리의 방면으로는 둘이시며
또 한 방면으로는 한 영 안에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계시기 때문에
영의 방면을 포함하면 셋 이십니다.
그러므로 확장되신 하나님 곧 둘-셋이신 하나님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삼위일체의 이론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싸움은 처음부터 잘못된 싸움이었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연구한 끝에 확장되신 하나님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다시 주님께 이것이 맞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후에는 그 이론을 많이 믿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거대한 누룩 덩어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제거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양심을 속이지 마십시오.
그리고 정직하게 판단해 주십시오.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과 우리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립니다.
모든 것들이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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