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9대 국회의원 임기 시작일은 30일이다. 지금 한국 정치판 최고의 핵으로 떠오른 이석기 당선인을 비롯해 종북(從北) 의혹을 받는 통진당 당권파 당선인들은 십여 일 뒤면 금배지를 단다. 이에 대해 진보를 ‘숙주’로 삼아 세력을 키워 온 종북파가 이제 진보의 주체인 양 전면에 나서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국회가 개원하면 이들은 국방예산과 전시작전계획을 다루는 국방위, 대외전략을 다루는 외교통상위, 치안을 관장하는 행정안전위에 들어갈 수 있다. 정부에 대한 정보접근권도 갖는다. 국회법이 정하는 의원의 특권이다. 종북 의혹이 따라다니는 이들에게 국가기밀이 노출될 수 있다는 게 많은 국민의 걱정이기도 하다.
괜한 걱정이 아니다. 2011년 8월 적발된 ‘왕재산 간첩단 사건’의 재판 기록을 보면 제도 정치권에 진입하려는 종북 진영의 움직임이 얼마나 조직적으로 진행됐는지 알 수 있다. 재판 기록에 따르면 대남공작기구인 북한 225국이 지난해 3월 왕재산의 총책인 간첩 김덕용(49)에게 보낸 ‘진보대통합당 건설 추진 문제’란 지령에서 북한은 민주당과의 연대 협상에 나선 당시 민주노동당에 “연립정부 구성이 아닌 국회 의석을 양보 받아내는 것, 정책적 담보를 받아내는 것 등 연대 방안들을 연구하고 토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동정부를 꾸려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것보다 국회 의석을 받아내는 게 더 효과적이란 지령이다.
북한 225국은 PD(민중민주)계열의 진보신당을 맹비난하면서 종북파엔 방어논리를 제시했다. 225국은 “진보신당이 ‘북핵·인권·세습을 비판하라’ ‘종북·친북을 성찰하라’고 요구하면 우선 ‘진보는 반자주·반북·반통일이어야 하는가’라는 논리를 들이대면서 한편으로는 ‘지난 시기에 종북이 있었다면 개별적인 사람들 성향이다’라는 식의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했다. 또 “조승수·노회찬 등 악질 종파분자들의 교활한 책동을 민노당 밖의 개별적 인사들이 직접 때리는 것도 필요하다”며 진보신당 정치인에 대한 공격 지령도 내렸다. 북한의 눈에 진보신당은 ‘반동’이었던 셈이다.
이 사건이 보여주듯 진보와 종북은 결코 하나가 아니다. 종북을 진보의 부분집합으로 보기도 어렵다. 경제·복지 분야에선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듯하지만, 북한·안보에선 확연히 다르다. 보편적인 진보의 가치는 인권·분배·환경·반핵 등이다. 그런데 종북파는 북한 이슈만 나오면 과민반응을 보이며 이런 가치를 외면한 채 북한 두둔에 나섰다. 북한 핵과 인권 문제가 대표적이다.
북한 3대 세습에 대해 “북의 권력구조를 언급하기 시작하면 남북관계는 급격히 악화될 것이다. 말하지 않겠다”(이정희 당시 대표)고 했고, 북핵에 대해서도 “북의 핵 보유는 자위용”이라고 한 당권파들이 장악한 통합진보당은 진보정당이 아니고 종북주체일 뿐이다.